아이고 설레라
이름을 잃은 지는 꼬박 9년이 된다. 이슈리라는 별명을 시작한게 스무살 때부터 였으니 그만치 됐을 거다. 본인의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 나는 그 중에서도 유독 내 이름이 싫었다. 싫다기 보다는 좋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몇 가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의 성, 나의 생김새 그리고 나의 이름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 중 이름만큼은 바꿀 수 있는 허들이 낮아 더 반발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내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첫번째 손자로 태어난 나를 유독 아끼셨다고 했다. (저는 잘모르겠지만요.) ‘이슬’처럼 맑게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 그대로 맑게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다 글을 쓰게 되서는.. 죄송합니다.
내 첫 별명은 ‘참이슬’이었다. 누구든 예상 가능한 별명이겠지? 처음 들었을 때부터 별 생각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른들과 첫 만남에서 농담으로 던질 만큼 의미 없어졌다. 그렇게 뻔해서, 20대 초반엔 더더욱 이름이 좋지 않았다. 특성 없는 이름, 기억에 남기보다는 희미해지는 이름.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무조건 적인 거부감이었다.
‘이슈리’는.. 스무살 때 답사 가서 만들었다. 누구 작가의 생가였다. 만우절이었던 당일, 친구와 장난 치다가 만든 ‘이쁜 이스리’를 육성으로 내 뱉다가 ‘이슈리’가 나왔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때 이름 써넣는 란에 썼다. 어중떠중 나를 아는 애들이 내 이름을 치고 내 계정을 찾아오는 게 싫었다. 다들 처음에는 웃었다. 누군가 했네, 하며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근데, 이제는 이슬이보다 이슈리, 이슈라, 슈리야 하고 먼저 부른다. 아예 ‘이슈리’로 나를 알게 된 애들도 많아졌다.
일하다 보면 페북 계정을 써야될 때가 있는데 그때 민망한 것 빼고는 좋다. 이름이 아닌 공식 애칭이 생긴 것이니 누구라도 날 편히 불러줘서 좋았다. 나 역시 기본 폴더에 '이슈리'라고 이름을 쓸 정도. 이젠 제2의 이름이 된 기분이다. 외국으로 치자면 미들 네임 정도 아니냐.
그래서 간혹 불러주는 ‘이슬아‘가 설렌다. 하다못해 연애를 할 때도 이름보다는 ‘자기’, ‘슈리’로 불리다 보니 이젠 이름이 설레는 포인트가 되었다. 지금은 그래서 이름이 좋아졌다. 한글자 꾹꾹 눌러 불러주는 그 이름이 두근거린다. 예전에는 ‘슈리’가 특별한 이름이었지만, 이젠 ‘이슬이’가 특별해졌다. 그러니 불러주세요, 간혹. 제 이름.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