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는 여자의 오늘 사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글 쓰는 이유미입니다. 지난 9월 말을 기점으로 제 인생에 대 역변(?)이 있었는데 이제야 브런치에 정식으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짬짬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도 제대로 전달을 못했던 것이 체기처럼 남아있었는데 이제야 정자세로 앉아 글을 씁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제 브런치 구독자가 만 이천 분이 넘고 아직도 꾸준히 구독자 수가 증가하고 있네요. 직장 생활하면서 제대로 신경도 못 썼음에도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살면서 거의 처음 느껴본 '확신'
아시는 분들은 아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지난 9월 30일을 끝으로 29CM를 퇴사했습니다. 굉장히 급작스럽게 내린 결정이었고 저도 제가 그렇게 빨리, 8년 넘게 다닌 회사를 정리하고 나올 줄은 몰랐어요. 살아오면서 거의 처음 느껴보는 ‘확신’이었다고 할 만큼 제 결정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퇴사한 지 석 달이 다 되어 가는 어제, 그러니까 12월 16일 제가 사는 동네에 작은 책방을 열고 정식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책방을 준비하고 오픈하기까지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퇴사 결정도 약 2주 정도 고민해 내린 결론이었고 사실 퇴사가 확실시되지도 않은 때에 책방을 가계약까지 했으니까요.
저는 그 어떤 직원보다 29CM를 좋아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애사심이 높았죠. 많은 직원들이 인정할 만큼 오래 다닐 자신이 있었고 그렇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저와 입사 시기가 비슷한 동료들이 하나 둘 퇴사하고 이직할 때에도 흔들림 없이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했거든요. 5살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보니 회사를 언제까지고 다닐 자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진 다니자 결심했었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무실이 합정에 선릉으로 이사를 하면서 출퇴근이 급격히 힘들어졌고 왕복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출퇴근에 쏟으며 약 석 달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이렇게 쭉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내가 얻게 되는 것과 잃게 되는 것도 떠올려봤습니다. 월급쟁이가 제일 속편 하다고 하듯이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돈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월급이고 뭐고 내가 살고 보자가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흔해빠진 멘트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시간’을 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퇴근하던 그날 몇 달째 임대 푯말을 붙이고 비어있던 10평 남짓한 가게를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늘 지나다니던 길이라 별생각 없었는데 그날은 문에 붙어 있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임대조건을 물어봤어요. 그렇게 일은 저질러졌고 저는 퇴사와 동시에 책방 오픈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간혹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책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책방 하는 게 작은 꿈이기도 했는데 엄청 빠른 속도로 이뤄진 셈이었죠. 2019년이 가기 전에 책방을 열게 되리라고도 상상도 못 했어요.
9월 말 퇴사를 하고 10월 한 달은 사전에 잡혀 있던 강의, 강연을 다니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11월부터는 책방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수중에 남은 돈을 생각하면 셀프 인테리어로 해야 마땅했으나 제가 하려는 책방이 그냥 서점은 아니고 책 대여 공간이기 때문에 인테리어 업체에 공사를 맡겼어요. 책 대여 공간이 조금 생소하실 텐데 일반적으로 대여점은 빌려서 가져가는 것이지만 저는 회수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책방에서 읽고 가는 콘셉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비슷한 콘셉트의 책방 중 합정동에 ‘종이잡지클럽’이 있죠)
엄마들이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책방에 와서 자신을 위한 독서를 했으면
다양한 타깃 중 저와 비슷한 또래 즉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엄마들이 이곳에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어요. 책을 좋아하는 저도 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집안일이 하나둘 보여서 집중하기 힘들더라고요. 읽다 보면 빨래할 게 생각나 세탁기로 가고 또 책 좀 읽다 보면 설거지거리가 보여서 설거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다시 집에 들어가서 남은 집안일 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단 책방에 와서 한두 시간이라도 자신을 위한 독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퇴사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살 게 있어 근처 편의점에 갔는데 저처럼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엄마들 서너 명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더라고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면서 저 엄마들이 잠시라도 책방에 가서 필사도 하고 책도 읽다가 집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책을 워낙 좋아한 저는 육아할 때도 책이 정말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는데 그런 영향을 좀 전파하고 싶기도 했어요. 아이들 책만 읽어줄 게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한 독서를 하면 정말 정말 좋은데!
책을 사는 경험보다 읽는 경험을 먼저 주고 싶어
어쨌거나 공사가 잘 마무리되어 엊그제 정식 영업을 시작했고 손님도 한두 분 찾아와 주셨어요. 구석진 동네에 이런 공간을 여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책을 사는 경험이 아닌 읽는 경험을 주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다음 날 책이 문 앞에 놓이는 요즘, 어디서 책을 사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을 모여서 읽고 필사, 낭독 등 다양한 모임을 통해 책을 경험하는데 의미를 두고 싶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책으로 가는 문>에서 ‘사는 동안 딱 한 권의 책만 만나도 충분하다’고 했듯 그 책을 저의 책방에서 발견하게 되면 좋겠단 큰 욕심이 생겼어요. 저는 이제 완전한 책방 주인이 되었어요. 혼자 작업하는 것에 익숙해서 손님이 없는 시간도 즐기고 있고 (주로 다음 책 원고 작업을 해요) 손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상이 돼가고 있습니다.
책방 운영과 동시에 카피 쓰고 강의, 강연, 책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짬짬이 하던 일들이 메인 업무가 되었으니 할 수 있는 게 더 늘어난 샘이죠. 제 공간이 생겼으니 그간 꼭 해보고 싶었던 심야책방과 책맥데이도 해볼 생각이에요. 독서모임과 글쓰기 모임, 필사, 낭독 모임 등을 천천히 진행할 것이고 원데이 클래스로 소규모 카피라이팅 강의도 할 예정입니다. 많은 동료들이 제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아쉬워해줬지만 책방을 열 계획이라고 하니 금세 표정이 해맑아지던 게 떠올라요. (네, 우리 모두에게 책방은 그런 존재죠. 생각만 해도 좋은) 마치 보내주고 싶지 않지만 보내주지 않을 순 없다는 듯이, 저에게 책방 주인으로서의 행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저는 준비가 덜 되었다는 핑계는 그만 대기로 했어요. 인생에서 준비가 완벽히 다 된 때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걸 교훈처럼 명심하기로 했어요.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은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잊지 않고 제 브런치를 구독하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위한 엄청 긴 공지였다고 생각해주세요. 책방 소식은 꾸준히 업데이트하겠습니다. 브런치 활동도 계속할 것이니 계속 찾아와 주세요. 밑줄서점 책방지기 이유미였습니다. :)
*밑줄서점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창박로 30
*운영시간 : 월-금 오후 1시 ~ 5시까지 / 토, 일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