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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15. 2023

다 필요한 것들이야!

"근데 가방에 뭐가 들었기에 이렇게 빵빵해?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

<1화>


-드디어 오픈!

 월요일 업무 보고 미팅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혜진이 보낸 카톡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링크를 클릭하니 A브랜드의 신상 호보백이 짠하고 나타났다. 곱다 고와. 나 역시 기다리고 있던 가방이라 상세 페이지를 쭉쭉 내리며 휘리릭 살폈다. 아이보리 빛 양가죽으로 잘 빠진 아이였다. 프리오더 기간에만 한정수량으로 15% 할인하는 제품이라 기획전 오픈 날짜를 혜진과 나는 손꼽아 기다렸다. 온라인 쇼핑몰 직원의 특권 중 하나는 시즌 신상이나 시즌오프 세일 상품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 호보백은 회사 내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신제품 촬영할 때 미리 보고 기획전 페이지가 오픈되면 꼭 사야지하고 벼르던 물건이었다.


-완전 대박. 무슨 색으로 하지? 스페셜하게 연보라색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데일리백으로 메기엔 부담스럽겠지?

-무난한 걸로 치면 블랙인데, 블랙 너무 많아서 좀 지겹고. 이번엔 산뜻한 걸로 할까?

-그래, 연말 기분 좀 내보자! 난 화이트로 할래.

-아참, 그나저나 우리 언제 보기로 했었지?


 연말이란 말에 혜진이 우리의 송년회 날짜를 떠올렸다. 모두 바쁜 연말이니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며 3주 전에 얘기한 터라 나도 깜빡 잊고 있었다. 키보드 옆에 놓인 몰스킨 다이어리를 펼쳐 약속 날짜를 찾아봤다.

-12월 14일이네. 어디서 볼지 정했던가?

-민하가 자기 집에서 보자고 했던 것 같은데?

-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장족의 발전이다. 주민하가 우리를 자기 집으로 다 초대하고!

-그러게. 주민하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일 아니야?


 3년이나 지난 주민하의 첫 출근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주민하의 첫인상이 다소 놀랍긴 했다. 갈색 리넨 재킷에 심플한 일자 청바지를 입고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주민하의 손과 어깨 그 어디에도 가방은 없었다.  




 때 이른 6월의 무더위는 옷을 대충 입게 만들었다. 더위만 생각하는 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의 자세가 아니다. 강력한 에어컨 바람으로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할 즈음 미리 챙겨 온 여름 카디건을 숄더백에서 꺼냈다. 카디건을 걸치기 위해 무거운 가방은 잠시 바닥에 내려놨다가 왼쪽 어깨로 위치를 바꿔 멨다. 좀 전까지 읽던 책을 다시 펼쳐 손에 든 채로 시선은 빈자리를 찾아 쓰윽 둘러봤다. 출근 시간 사당역에서 빈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빠른 포기가 정신건강에 좋다 판단한 나는 읽던 책에 몰입하기로 했다. 그때 휴대폰 진동음이 느껴져 재빨리 가방을 뒤졌다. 뒤적뒤적한 다음에야 휴대폰이 손에 잡혔다.


-어디쯤 왔어?

 입사 동기 혜진의 카톡 메시지였다. ‘사당 지났음’이라고 짧게 입력하고 왜?라고 전송했다.

 -올 때 아아 좀 사다주라. 오다가 스벅 들른다는 게 깜박했어.

 나도 커피가 간절했다. ‘아아’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목구멍에서 시원한 커피가 꼴깍꼴깍 넘어가는 시원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덩달아 내가 주로 마시는 달디 단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살짝 업되는 듯했다. 대중교통의 고단함을 견디고 매일 한시간 반씩 걸려 출근하는 경기도민의 설움은 회사 앞 스벅에서 마시는 커피가 견디게 해주는 지도 모른다. 나는 ‘오키’라고 답장을 보냈다.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툭 던져 넣고 책에 시선을 두고 5분쯤 흘렀을까? 누군가 내 팔을 툭 쳤다.

 “이야!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백수진 하나네. 저기서도 딱 넌 줄 알겠다.”

마케팅팀 박 대리였다. 박 대리가 4호선을 탔었나? 평소에도 목소리가 커서 같이 있을 때 민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조용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게 웬 소란이람? 나는 검지 손가락을 세우며 쉿!하고 다그쳤다.

 “조용히 좀 해. 쪽팔려 진짜.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처음 봐?”

 “귀한 장면이잖아. 한번 봐라. 다 스마트폰 보고 있잖아.”

 “각자 좋아하는 거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거지 뭘 그래. 유난 좀 떨지 마.”

 “멋져서 그러지. 오늘 라임색 원피스도 아주 잘 어울리고?”

놀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분간이 어려운 박 대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가방에 뭐가 들었기에 이렇게 빵빵해? 퇴근하고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가?”

 “월요일부터 여행은 무슨... 음... 책, 다이어리, 휴대폰, 화장품 파우치, 지갑, 안경 케이스, 필통... 다 필요한 것들이야.”

 “아니 책을 두 권이나 갖고 다녀?”


 나는 손바닥만 한 가방은 절대 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책이 두 권 이상 담길 사이즈여야 그다음부터 디자인이나 가격을 체크한다. 보따리장수처럼 가방에 한 짐 넣어갖고 다니는 버릇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학교 가기 전에 준비물을 꼼꼼히 챙기는 어린이였던 나는 아침 등굣길에 비가 오지 않아도 전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봤다면 무조건 가방에 우산을 챙겨야 직성이 풀렸다. 체구도 작은데 낑낑거리며 제 몸보다 큰 가방을(당시에는 사물함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메고 다니는 걸 늘 안타깝게 생각하던 엄마는 비 오면 데리러 갈 테니 걱정 말고 제발 우산은 두고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우산의 무게가 고작 얼마나 한다고. 그럴 때마다 3단 우산이라 하나도 무겁지 않다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어린 나는 그날 수업할 교과서와 공책, 준비물, 물병, 필통, 우산 등이 꽉꽉 들어찬 가방을 메야 그 무게감에 비로소 안정되는 듯했다.


 친구들마저도 가방에 한 짐 갖고 다니는 나를 이해 못 했지만 때로는 가방에 든 것을 하나둘 꺼낼 때마다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필통은 나의 자부심 같은 거였다. 엄마가 용돈을 줄 때마다 동네 상가에 있는 문방구에 가 필통을 샀다. 용돈으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유일한 학용품이었다. 입구를 열면 2단으로 변신하는 필통, 화려한 비즈가 박힌 필통, 때로는 딱딱한 하드 보드지를 자르고 비닐을 씌워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사진을 넣어 만든 것까지. 나의 책상 서랍 중 제일 아래 가장 큰 곳엔 그동안 사 모은 필통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는 거의 날마다 필통을 바꿔 다녔다. 어른인 지금의 내가 출근할 때마다 가방을 바꿔 메는 것처럼. 성적은 중간 이상을 넘지 못했고 말주변이 좋아 아이들에게 주목받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내가 유일하게 아이들에게 집중받을 수 있는 것이 ‘새로운 필통’이었다. 주말에 새 필통을 사면 빨리 월요일이 되길 바랐다. 그때부터 나는 늘 뉴 아이템에 목말라했다.


 “여기 아이스커피 딜리버리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갈증 나 죽는 줄.”

 혜진의 책상에 차가운 커피를 내려놓고 곧장 맞은편 창가자리인 내 자리로 건너갔다. 한 섹션에 가운데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엠디 파트와 디자인 파트가 마주 보고 있고 디자인 파트 끝에 내 자리가 끼어있다. 이커머스에서 에디팅 카피라이터를 두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파트를 따로 만들기도 애매한 게 담당 직원은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신규사업팀에 때론 브랜딩팀에 때론 디자인파트에 소속됐다. 나는 직함이나 파트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커머스에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꼈을 뿐.



 -(삼성카드) 소중한 백수진 고객님의 카드대금 결제일은 15일입니다. 6월 16일 현재 122만 원이 연체로 확인되오니 자동이체 통장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월급이 입금되면 3일 이상 통장에 그대로 있었던 적이 없었다. 딱 3일이면 사라진다. 엄마에게 보내는 생활비, 원룸 월세, 카드값, 보험료, 각종 세금과 휴대폰 요금까지. 그중 카드값이 가장 문제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했을 정도로 빠듯했다. 간신히 리볼빙을 해지하고 따박따박 카드값 내면서 지내나 했는데 방심하고 지른 가방과 신발이 발목을 잡았다. 카드사에서 날아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한숨 쉬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혜진이 말했다.


 “아까 최 주임이 찾던데? 오전에 원고 넘기기로 한 거 있었어?”

그제야 금요일 늦게까지 풀리지 않아 주말 동안 마무리 짓겠다고 한 여름 샌들 기획전 원고가 떠올랐다. 완성은 했는데 메일 보내는 걸 깜박했다. 출근해서 바로 디자인팀에 넘겨야 했던 최 주임이 적잖이 당황했을 걸 생각하니 손에 땀이 났다. 나는 곧장 노트북을 열어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메일함을 열었다. 나에게 보낸 메일함에서 주말에 작성한 원고를 찾아 최 주임 메일로 전송했다.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출근한 나를 발견한 최 주임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미안 미안! 메일 보내는 걸 깜박했지 뭐야. 지금 막 보냈어요. 확인해 봐요!”

최 주임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오던 길을 턴해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책상 위에 놓인 시원한 바닐라 라떼가 시야에 들어왔다.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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