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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04. 2023

어차피 우린 일로 만난 사이니까

"결국 회사는 일로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4화>


 그날 저녁 퇴근하자마자 봉식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일주일에 2~3일은 야근이나 회식으로 어쩔 수 없이 늦게 들어오는 터라 정시 퇴근하는 날 저녁은 가급적 아니 무조건 봉식이를 산책시켰다. 봉식이는 일 년 전 입양한 반려견이다. 개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으나 운명에 이끌리듯 인스타그램에서 봉식이의 사진과 사연을 보고 개를 보호하고 있는 분께 무작정 디엠을 보냈다. 십여 년 전 키우던 몰티즈 쫑이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언젠가 또 겪게 될 슬픔을 짐작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봉식이를 보자마자 정확한 이유도 없이 얘는 내가 키워야 된다,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봉식이를 키우게 된 사연을 되돌아볼 때마다 일도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앞뒤 재지 말고 돌격 앞으로! 하듯이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어쨌든 그 결과는 봉식이와 나, 모두가 좋았으니까.


 실외배변을 하는 봉식이에게 산책은 선택 아닌 필수다. 응가를 하지 않고 이틀까진 참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못 참겠다 싶을 땐 내가 아무리 늦게 퇴근해 흐느적거려도 봉식이가 나가자고 보채면 나가야 했다. 산책이 귀찮게 여겨질 때마다 봉식이의 하루가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퍼져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한 생명의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원하는 장소에서 배변하고 싶은 욕구까지 가로챈단 말인가.

 

 귀찮음을 뒤로하고 나간 여름밤은 봉식이보다 내가 더 좋아했다.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저녁만 돼도 온 마을은 숨죽인 듯 고즈넉했다. 물속 같은 이 고요함이 좋아서 여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지하철 역과 3분 거리의 오피스텔에서도 살아봤지만 왕복 6차선 도로 곁의 집에서 자는 일은 도로 한복판에 이불 깔고 자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 뒤로는 고요함을 무조건적인 주거 조건으로 삼았다. 시골은 아니지만 산이 가까워 고라니 소리도 자주 들렸다. 누군가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듯한 괴성을 고라니 소리로 인식하지 못했을 땐 밖에서 어느 미친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줄 알았다. 누군가가 일정한 간격으로 그것도 심야에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면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할 노릇인데 모두가 잠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미친 사람의 고함이 아니라 고라니의 함성임을 알게 된 뒤로는 동네가 더 친근하게 여겨졌다.


 반드시 집에서만 입어야 할 목 늘어난 티셔츠에 스웨트 반바지 그리고 삼선 슬리퍼는 나의 똥책(실외배변하는 반려견을 위한 산책을 일컫는다) 복장이다. 집에서는 최대한 허리에 압박을 가하지 않는 반바지를 입는 터라 주머니에 휴대폰이라도 넣으면 바지가 한쪽으로 기울며 흘러내릴 지경이 됐다. 이대로 걷다간 한쪽 엉덩이가 메롱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기에, 나는 봉식이 하네스 줄을 내 허리에 묶고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보호자의 허리에 묶을 수 있는 하네스는 두 손을 자유롭게 했다.

 누가 내 자식 아니랄까 봐 봉식이는 나처럼 늘 가던 코스로 산책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단 한 곳. 집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화단이다. 관리하는 사람이 딱히 없는 그곳에는 잡초가 무성한데 봉식이는 유독 그 위에서만 똥을 쌌다. 어쨌거나 새로운 골목으로 모험을 떠나기보다 익숙한 길을 봉식이를 앞세워 터덜터덜 걷다가 불현듯 주민하가 떠올랐다.


 사람의 첫인상은 얼마나 중요한가. 보자마자 나와 비슷한 부류일 것 같은 판단이 서는 사람과 절대 아닐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몇 회사를 전전하면서 쌓인 데이터로 보아 대부분 관상은 과학이고 틀리는 법이 없었다. 물론 내 경우에만 국한된 데이터 결과지만.

 새 직장에 적을 둘 필요까진 없을 텐데 주민하는 달랐다.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은 무조건 쳐낸다고 보일 정도로 거리를 두었다. 팀원이라곤 유일해 앞으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할 나에게 까지 담을 쌓는 기분이었다. 말수가 적은 건, 나 또한 상대방과 친해지기 전까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었다. 말이 적은 것과 사람을 밀어내는 건 확실히 티가 났고 상대방이 모를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을 안 하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물어보는 말에는 말로 대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응기라고만 여겨야 하는 걸까? 주민하는 옆자리에 앉은 내가 묻는 말에 슬랙으로 대답을 했다. 데이터에는 잡히지 않았던 변수였다. 처음엔 뭐지 싶었는데, 몇 번 경험한 뒤론 나도 슬랙으로 필요한 말만 하게 됐다.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 거리는 영영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더욱이 언제부턴가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신경 쓰였다. 그러니까 주민하가 쌓인 물건들로 빈틈을 찾기 어려운 내 자리를 이상하게 깔보는, 아니 깔본다기보단 진절머리 난다는 듯, 지긋지긋하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초리를 느꼈다. 마치 바퀴벌레라도 나오는 책상처럼 근처에도 오기 싫어하는 듯한 시선을. 물론 괜히 물건을 쌓아두기만 하고 정리하지 않는 내가 스스로 찔려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내 옆자리 동료가 물건을 1도 안 사는 사람이냐고.


 결국 회사는 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직장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낼만한, 때론 의지할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게 나에겐 혜진이다) 모두에게 두루두루 친한 사람을 보면 피곤해 보일 뿐 딱히 닮고 싶거나 그 무리 중에 하나가 나였으면 하고 희망한 적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주민하의 차갑고 정 없는 첫인상을 일을 잘하는 그룹의 데이터에 입력해 보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우린 일로 만난 사이니까.

 봉식이가 이끌어준 대로 두 다리를 움직이고 의식에는 주민하로 가득 찬 사이 어느덧 공동 현관 앞에 다다랐다. 밤이어도 여름밤은 후텁지근해서 10분만 걸어도 등에 땀이 배어났다. 굳게 닫힌 현관 앞에서 발길을 멈춘 봉식이는 목이 마른 지 헥헥거리며 나를 향해 빨리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라고 눈빛으로 재촉했다. 목마른 봉식이만큼이나 나도 이가 시릴 정도의 맥주가 간절했다.




 주민하의 차분하고 다소 냉랭한 성격은 그의 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감성적으로 쓰는 편인 나의 글과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고, 고민 끝에 오히려 그런 점이 장점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원고가 가볍지 않고 때론 몰입해서 집중하는 글을 쓰는 주민하를 가전제품을 주로 다뤄야 하는 테크 카테고리 담당으로 지정했다. 고가의 제품을 다루는 카피나 워딩은 묵직한 편이 나았다. 나는 회사 사이트의 전반적인 텍스트를 두루 살펴야 하니 일단 테크 외의 나머지를 내가 챙기기로 했다. 최종 검수는 내가 맡지만 최대한 주민하의 스타일은 유지하기로 했다.


 기자 지망생이었다는 주민하의 과거를 팀장에게 듣고 그래서 글이 조금 건조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딱딱한 글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었다. 테크 카테고리 엠디 박소영은 처음 주민하의 원고를 조금 낯설게 여겼지만 남자 고객과 연령대가 좀 있는 고객들이 주 타깃층이다 보니 주민하의 글이 오히려 수월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고 의견을 남겼다. 나는 주민하가 회사의 스타일에 맞춰 자신의 글을 바꾸기보다 개성을 잘 살렸으면 했다. 한 브랜드의 텍스트가 하나의 톤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커머스는 각 카테고리의 색을 살리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대리님은 책 좋아해요?

 -네, 장르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읽어요.

슬랙으로 업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 궁금했던 걸 물었다.

 -책 갖고 다니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스마트폰으로 읽어요.

 -눈 아프지 않아요? 나도 전자책 시도는 했는데, 영 안 맞더라고요. 난 종이책 팔랑팔랑 넘기면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

 -저도 예전엔 종이책 봤는데... 나무를 생각하니 종이책 못 읽겠더라고요.


 나무? 나무라고? 순간 텀블러를 쓰지 않고 매번 종이컵을 사용하는 주민하의 아이러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환경이 걱정되면 종이컵 덜 쓰는 게 어떻겠냐고 메시지를 보내려다 말았다. 책을 만드는데 쓰이는 나무와 종이컵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나무를 주민하는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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