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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Jul 05. 2023

낯설지 않은 몸치의 기억

결국은 몸을 익숙하게 하기


    

복싱을 시작한 첫 주, 5일 모두 체육관에 나갔다. 오늘 남편이 집에 있어서 운동 안 가고 같이 놀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남편은 나와 놀 계획이 없었고(훌쩍, 콧물 좀 닦고 가자) 덕분에 나는 이번주 5일 중에 가장 일찍 가서 가장 오래 있다 오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아침엔 안개가 끼고 오후가 되면서 습도가 점점 높아졌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에 도착했을 때 내 코는 이미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개도 아니고 촉촉한(?) 코라니). 집에서 체육관까지는 딱 10분. 걸은 지 5분이 좀 넘으면 스포츠브라 안은 이미 땀으로 흥건하다. 에어컨이 켜 있는 체육관에 들어가도 이미 나오기 시작한 땀을 단숨에 잡을 순 없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 안내 포스터가 있는 거울 앞에 서면 내가 다한증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천천히 열을 올리며 스트레칭을 한 뒤 줄넘기를 한다. 어제까지 난 한 번에 20개 넘기가 힘들었다. 발 스텝과 줄넘기를 돌리는 팔의 속도가 맞지 않는 걸까, 줄넘기가 발에 자꾸 걸려 타임벨이 울리는 3분 사이에 서른 번은 멈췄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한 번에 70개를 넘겼다. 관장님도 “이제 처음보다 줄넘기 좀 하네요?” 하신다. 밖에선 겸손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나는 “아… 네, 아주 조금요?” 대답하며 속으로는 내심 뿌듯해한다.

      

지금까지 내가 이해한 복싱의 기본은 스텝이다(관장님 왈). 줄넘기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것도 관장님 왈). 리듬을 타며 줄을 착착- 넘기는 연습을 통해 복싱 스텝의 기초를 다진다(고 한다). 예전에 관장님이 배울 때는 줄창 줄넘기만 연습했다고 한다. 젊은 날 복싱을 좀 배워 드라마 <야인시대> 단역 엑스트라로 출현했다는 남편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처음 가면 나무 마루만 한 3개월 닦다가 줄넘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복싱 스텝과 쨉을 배우는 건 또 더 나중이고. 복싱은 마루를 닦고 줄넘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배우는 걸 곁눈질로 보고 귀동냥 들으며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복싱이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히면서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는가 보다. 운동하고 싶어 체육관에 왔는데 몇 개월 동안 줄넘기만 하게 하면 흥미가 떨어져 남아 있을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니까. 나도 그 덕에 복싱 입문 3일 만에 글러브도 끼고 샌드백도 쳤다. 허공에 맨 주먹만 날리는 것보다 조금 그 맛을 보면 계속 나오고 싶어지는 건 당연지사. 내 입에서도 “재밌다”라는 말이 나왔다.      


오늘까지 배운 기술(?)은 스텝을 뛰면서 하는 ‘쨉쨉원(오른손잡이 기준 왼손이 나간다)투(오른손이 나간다)’를 기초로 ⓵원투-원투(하이픈은 백 스텝) ⓶원투-원투원투 ⓷원투원투-원투 ⓸원투원투-원투원투 이렇게 네 가지다. 총 여섯 가지 루틴이 있는데 오늘까지 나는 그중 네 개를 배웠다. 이제 며칠 됐다고 쨉은 어렵지 않게 하는 것 같다(풉-). ‘원’에서는 앞으로 나가고(보통 앞으로 나간다. 상대방이 제자리에 있거나 내 쪽으로 오면 거기에 맞춰 거리를 유지한다), ‘투’에서는 제자리에서 허리를 돌려 펀치를 날린다. 허리를 돌릴 때는 오른쪽 발가락을 바닥에 붙이고 발은 바깥으로 틀어줘야 한다.   

   

하지만 실전은 역시 쉽지 않다. ‘투’에서 뜨면 안 되는 발이 뜨거나, 뜨지 않는다 해도 발가락 전체를 바닥에 붙여야 하는데 엄지발가락 코 정도만 붙인다든가, 손 위치를 잘못 잡아 태권도 동작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식의 실수를 계속하게 된다. 또, 백 스텝을 밟고 나면 ‘원’이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 스텝이 꼬이면서 ‘투’도 흔들린다. 어떤 운동이든 ‘내 마음과 같지 않은 몸뚱이’를 보게 되는 과정이 있을 테지만 운동이란 걸 난생처음 배우는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운동치의 기운을 스스로에게 느낀다. 하지만 낯설지가 않다(여기서 콧물 한 번 더 닦자, 훌쩍).      


여담으로 하는 얘기인데, 대학교 1학년 때 과에서 문선을 배울 때도 난 스스로에게 몸치의 기운을 강하게 느꼈었다. 지금은 노래 제목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딱 하나 난다. ‘불나방’.) 민중가요에 맞춰 문선을 배웠는데 그때도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핵심은 마찬가지로 발과 손이 따로 논다는 점. 몸동작을 익숙하게 하는 건 춤이나 운동이나 마찬가지니 당연한 얘기겠다. 어쨌든 나는 몇 달 문선을 배우고 5월 대동제 무대에 올라갔으니 연습하면 된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약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머리가 큰 나는 자꾸 편한 것, 핑계 댈 거리를 찾게 된다. 연습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을 새기며 주말을 맞이해 보자(주말엔 운동이 없지롱!).



/23.06.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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