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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Jul 07. 2023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서다

생각은 넣지 않고 행동만 하겠다고 다짐하다



오늘로써 2주 차 운동을 마쳤다. 이번 주에도 5일 모두 가서 운동한 지 딱 열흘이 되었다. 이번 주의 가장 큰 이슈는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간 것과 새로운 기술 두 가지를 배운 것.     

 

화요일에는 낮에 일정이 있어 처음으로 저녁에 운동을 갔다. 저녁으로 밥 없이 상추쌈에 간장제육볶음을 먹은 후, 8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까지 그치지 않았고, 내가 나간 시간에는 억세게 퍼붓기까지 했다. 우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빗줄기를 헤쳐 체육관에 들어가니 낮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대부분 초중등 학생이나 기혼 여성들이었는데 저녁에는 역시 20, 30대의 직장인들이 많았다. 관장님의 스탠스가 낮과 다른 걸 봐서는 운동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 같았다. 회원들끼리 스파링도 많이 했는데 관장님은 “더 빨리!” “더 세게!”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쭈구리 모드로 구석에서 몸을 풀고 줄넘기를 하려는데 눈길이 계속 가는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는 연배가 있는 여자 회원이 줄넘기를 정말 기가 막히게 잘했다. 낮에 봤던 아저씨 회원도 줄넘기를 잘했지만 쉬는 타임에는 쉬셨는데, 그분은 쉬지도 않고 타임벨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루틴대로 쉬지 않고 줄넘기를 했다. 줄에 걸려 멈추는 법도 없이 줄넘기를 하고는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월요일에 쉬지 않고 90회를 넘겨 좋아한 나는 갑자기 갈 길이 멀어지는 걸 느꼈다.      


나는 그날 첫 번째 기술의 마지막이자 여섯 번째 루틴을 겨우 배운 상태였지만(익힌 것도 아니고 그저 배운 정도) 관장님의 부름에 따라 링 위로 불렀다. 관장님과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 뒤, 관장님의 구령에 맞춰 링 위를 쉴 새 없이 돌았다.    

  

“1번 갑니다. 원, 투, 백, 원, 투”

“4번 갑니다. 원, 투, 원, 투, 백, 원, 투, 원, 투”

“스텝 멈추지 말고 계속 뛰면서!”

“5번 갑니다. 쨉, 쨉, 투! 그렇지!”

“6번 갑니다. 원, 투, 쓰리, 백, 투… 아니지, 아니지, 스텝이 왜 그래?”  

   

정말 잠깐이라도 쉴 타임을 주지 않았다. 링 위에서 관장님이 이동하는 대로 따라가는데 동작도 아직 못 익힌 데다 푹신푹신한 링 위에서 뛰려니 체력이 두 배로 소진됐다. 체력도 달리고 동작도 어버버 하는 나를 보고 링 위에서 스파링 하는 사람들이 웃었다(누구나 처음은 있으니까 창피하지는 않았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요!’ 외치고 싶었지만 숨이 헐떡거려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원, 투 열 번 갑니다.”

“원, 투, 하나! 숫자 세세요! 숫자 안 세면 다시 처음부터 갑니다.”     


나는 헥헥거리며 “하나!” “둘!” 겨우 숫자를 셌다. 아, 저녁으로 먹은 제육볶음이 짰던가. 그날따라 냉수가 정말 맛있었다. 그래도 관장님이 들고 있는 미트를 칠 때 들리는 ‘탁- 탁-’ 소리가 듣기 좋았다. 기운 빠지게 운동을 하고 10시쯤 나가려는데 아까 그 줄넘기를 기막히게 잘했던 회원이 나타났다. 그제야 글러브를 낀다. 한 시간 넘게 몸 풀기 운동만 한 것이다. 비 오는 날 밤 10시, 체육관 사람들의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목요일에는 두 번째 기술을 배웠다(천천히 알려주셔도 괜찮은데,라는 말이 잇몸까지 올라왔다 들어갔다) 이름하야 ‘씁-빠’ 기술. ‘씁’에 오른발을 한 뼘 옆으로 띄워 옮기고 ‘빠’에 오른 주먹을 날린다(첫 번째 기술 ‘투’의 동작이다). 오른쪽 옆으로 비켜 상대방이 날리는 주먹을 살짝 피하는 방법이다. 역시 말이 쉽다. 처음에는 “씁-빠” 하며 이 기술만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첫 번째 기술의 여섯 가지 루틴과 접목을 시켜 연습했다. 일명 ‘콤비네이션’이다. ⓵번 루틴과 섞으면 이런 구령이 된다. “원, 투, 백, 원, 투, 씁, 빠.” 당연히 첫 번째 기술이 연습되어야 콤비네이션을 잘할 수 있다.      


첫 번째 배운 기술과 ‘씁-빠’의 콤비네이션을 다 익히지도 않았는데 오늘(금요일) 또 세 번째 기술을 알려주셨다. 원래 금요일은 특별한 지도 없이 개인 연습만 하는데 어제 에어컨 설치 때문에 잘 봐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하시면서(난 어제 충분히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흐흐흐…). 세 번째 기술은 ‘돌리고’다(정확한 명칭인지는 모르겠다. 계속 돌리고, 돌리고라고 구령을 붙여서 헷갈린다). 상대방의 공격을 더 큰 반경으로 피하는 기술이다. 관장님이 “돌리고” 하면 왼발을 90도 돌리고 오른발도 돌려 기본자세가 되게 만들면 된다. 그리고 꼭 잊지 말고 ‘원, 투’ 동작을 붙여야 한다(주말 지나면 까먹을까 봐 기록하는 마음으로 쓴다). 물론 지금까지 배운 기술 세 가지를 모두 콤비네이션 할 수 있다.      


역시 첫 번째 기술 ⓵번 루틴과 합치면 “원, 투, 백, 원, 투, 돌리고, 원, 투, 씁, 빠”와 같은 구령이 된다. 또 역시 입으로 하는 건 쉽다. 발과 주먹을 움직이면 난리가 난다. 근본 없는 몸부림이 펼쳐진다. 오늘도 역시 주변에 있는 회원 분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래도 이번엔 관장님이 “처음엔 다 그래요. 두세 달 지나면 초보자들 하는 거 보고 나도 그랬지, 하게 될 거예요.”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다.      



땀 찬 글러브를 말리는 중. 지독한 땀 냄새를 맡고 싶지 않다면 운동이 끝난 후 잊지 말고 해야한다.



오늘 다짐한 게 있다. 복싱을 하러 갈 때는 가고 싶다, 가기 싫다 생각은 넣지 않고 일단 무조건 갈 것. 사실 재미있으면서도 날씨에 따라, 마음에 따라 살짝 고민이 될 때가 있었다. 아직 초반이니까 가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올 틈을 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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