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여행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는 나인데 몇 주 전부터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책을 읽다가 ‘이런 게 여행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작가는 여행을 갈 때면 습관처럼 티 코스터를 챙긴다고 했다. 평소에 집에서 쓰는 코스터 말이다. 그 코스터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여행지 기차 안 테이블에서 쓰기도 하고, 숙소 침대 위에서 캔 맥주 한 잔을 마실 때도 쓴다고 했다.
평소에 쓰던 코스터를 여행지에서 쓰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애착 물건일까? 아니면 익숙한 걸 좋아하는 사람일까? 작가의 얘기는 이랬다. 코스터가 여행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을 잇는 역할을 해준다고. 그리고 자신이 어쩌면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나에게 여행이란 ‘특별한 무언가’인데 그 특별함이 평온한 일상을 깨뜨리는 불편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익숙한 물건으로 특별함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에 힌트를 얻었다. 여행지를 익숙하게 만들자. 비교적 자주 갈 수 있는 여행지를 만들어서 그곳에 갈 때면 ‘음, 낯설지만 익숙해’라는 느낌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갈 때마다 ‘아, 여기는 이렇게 변했네’ ‘역시 이래서 내가 여기를 좋아했어’ 하고 말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내가 가고 싶은 북미나 유럽을 그런 곳으로 정할 순 없었다. 차선이지만 일본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을 가보진 않았지만 일본 여행을 한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철학의 길’이 있다는 교토. 산책로를 따라 나무가 울창하고 작은 수로가 있다고 했다. 난 그러고는 선배 C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금부터 매월 5만 원씩만 모으면 내년 이맘때쯤 혼자 다녀올 수 있겠다는 얘기를 했다. 몇 장의 사진과 나의 상상으로 ‘철학의 길’은 단번에 나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도 볼 수 있다. 이러니 산책을 안 할 수가 있나.
그러다 오늘 아침 산책을 하면서 우리 동네에도 ‘철학의 길’이 있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을 발견했다(정말 소름이 돋았다!). 바로 내가 아침 산책을 할 때면 매번 지나가는 ○○천, 그 천변이 나에게는 ‘철학의 길’이었던 것이다. ○○천은 농수로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는 물이 꽉 차지만 겨울이나 봄에는 바닥을 보이기도 하는 곳, 운이 좋으면 왜가리나 청둥오리를 볼 수도 있는 곳이다. ‘나의 철학의 길’도 인적이 드물어 혼자 걸으면 자꾸 뒤를 확인하고 싶은 코스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천변을 따라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천변 건너편 대단지 아파트 옆길로 산책을 한다.
전체 산책 코스로 보자면 반환점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곳이다. 그쯤 되면 내 다리는 걷는 동작에 익숙해지고 한쪽 귀로 듣는 음악도 존재감이 거의 없다. 그러면 불쑥하고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떠오르다 글감으로 정리되기도 하고, 내가 요즘 느꼈던 감정이 읽히기도 한다. 철학이 별 건가.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게 철학이지. 아쉽지만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아이돌 음악만 신나게 들으며 오기도 하지만 그런 날도 그런대로 좋다. 나에겐 드물게 텐션이 올라가는 날이라 뭐라도 하고 싶은 두근거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자에게 ‘철학의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쉽게 나타나지는 않는 것 같다. 우연히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일본 교토에 각각 ‘철학자의 길’과 ‘철학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도 나의 동네에 그런 곳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었다. 참고로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1년 반 정도가 되었고 꾸준히 산책을 한 건 1년 정도가 됐다. 전에 살던 곳에서도 여러 코스를 만들어 가며 아침 산책 겸 운동을 했었는데 ‘나의 철학의 길’은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나만의 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싶은 곳은 없었다. 또 반대로 ‘이런 곳이 나의 철학의 길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욕심이 나는 곳에서는 이상하게 ‘철학’이 되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건 산책하며 드는 생각이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는 거다. 이불킥 하고 싶은 며칠 전 나의 감정과 행동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자책과 후회보다는 내가 왜 그랬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구나.’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구나.’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생각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걷다 보면 진취적으로 무언가 계획하고 결심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나를 발견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런 산책의 맛을 본 사람이라면 이제 산책을 그만두기는 어려워진다. 비가 오더라도 날이 춥더라도 햇볕이 내리쬐더라도 나가 걸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는 나의 철학의 길까지 발견했으니 어떻게 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철학의 길을 발견한 나는 지금 정말로 신이 난다. 나는 이런 것에 삶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