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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Apr 27. 2019

‘엄마의’ 부엌은 싫다

“찰찰찰찰.”


엄마가 쌀 씻는 소리는 늘 경쾌하고 리드미컬했다. 쌀을 씻고 조리질을 마쳐 밥솥에 앉히기까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엄마는 참 재미있는 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래서 ‘나도 언젠간 엄마처럼 재미있게 쌀을 씻을 수 있는 날이 올 거야’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그땐 그 일이 엄마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이제 나에게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우리 부부가 주말부부가 된 지금, 하루 중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다. 주말부부가 되기 전에도 식사와 관련된 일은 주로 내가 맡아서 했지만, 지금은 전적으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되었다. 남편이 집에 오는 주말이면 그 책임은 더해진다. 내가 “오늘 뭐 해 먹지?” 라고 물어도 “글쎄”, 혹은 “아무거나” 라고만 답하는 남편을 대신해 냉장고 속 재료와 마트에서 사 올만한 제철 재료를 생각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난 왜 이렇게 가족의 밥상을 준비하는 데 혈안이 된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을까.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그게 뭐 특별한 일이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 내 언니는 나와는 아주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다. 언니네 가족의 주 식사 당번은 형부다. 냉동실에 다져 놓은 마늘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것부터 메뉴를 정해 요리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형부의 몫이다.


언니네 부부나 우리 부부의 주된 식사 책임자가 정해진 이유는 사실 동일하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이 담당하는 것뿐. 하지만 나는 그것이 굳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집안일, 특히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생활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가 아닌가. 그것을 전적으로 한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나머지 한 사람에게도 썩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정 부모님이 그러한 경우다.


아빠는 요리에 이응도 모르는, 봉지 라면도 끓일 줄 몰라(귀찮아서인지 정말 끓일 줄 몰라서인지는 여쭤보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아빠는 밥솥에 쌀도 앉힐 줄 모르신다) 집에서조차 컵라면은 드시는 분이다. 엄마는 이런 아빠가 답답해 할머니께도 종종 얘기하신단다. “정선 아빠는 어쩜 아무 것도 할 줄 몰라요.”


엄마도 오죽 답답할까, 하는 생각에 공감해주고 싶지만 내 입에선 이 말이 먼저 나온다. “아빠 인생에서 엄마랑 산 세월이 반절이 넘는데, 아빠가 그렇게 된 건 엄마의 책임도 있어!”


한 20년 후에 나도 내 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말만은 듣고 싶지 않는데 엄마를 많이 닮은 나는 벌써부터 두렵다. 남편이 서울로 복귀하면 나의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밥하는 일에 동참을 시킬 생각이다.


내가 한 음식을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은 정말 보람되고 행복하지만 그 일을 나 혼자서 해내고 싶지는 않다. 부엌에서 혼자서만 분주한 엄마의 뒷모습을 딸아이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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