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디자이너 시절 저는 사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깨닫고 혼자 채워나가야 했지요.
생각해 보면 사수가 없어서 제가 익힌 모든 것들이 진짜 제 것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떠먹여 주는 것과 내가 파서 알아내는 것은 질과 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혼자 깨달아보니 신입 시절 이런 것들을 빨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처럼 비전공자에 사수 없이 혼자 곤경을 헤쳐나가는 디자이너들이 보시고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제로 깔리는 것은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럭저럭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아먹는 사람 말구요. 그리고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개발자, 마케터 직군에게도 통하는 말들입니다.
우선 키워드는 '기술'입니다. (저는 종종 전술이라고도 부릅니다.)
기술
모든 직군, 화이트 컬러, 블루 컬러 상관없이 초급자 시절에는 기술을 빨리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빨리 익혀야 하는 기술이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 정의 내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술이란 기초공사이이며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언젠간 문제가 터집니다. 기술만 잘 익혀놓으면 철학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먹힙니다. 언젠간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할 때가 오겠지만 그전에 빠르게 모든 것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소화력을 기르는 것까지가 기술 익힘의 마지막장입니다.
디자이너의 기본 기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맙소사.
디자이너가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
마케터가 마케팅과 상품, 판매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닙니까. 어떤 고객이 일을 맡기고 싶어 할까요? 설령 생각해 봤다 하더라도 그 좁은 식견으로 생각한 것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계속 고민하십시오.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계속 끊임없이... 계속. 내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해보고 틈이 없도록 견고한 정의를 내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이 전공자가 아니라면 사용성이니, 퍼소나니, 사용자 경험이니 다 일단 집어치우고 디자인의 기본 중 하나인 '형태'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결국 2차원의 스크린 속에서 우리가 그려내는 것들은 점,선,면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복잡한 풍경을 그려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간단한 점,선,면으로 시작하여 밀도를 더해 좋아보이는 그림이 완성되거든요.
이 형태에 대해 잘 알아놓아야 기본적인 구도, 레이아웃 잡기가 수월해지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판단하여 밀도를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조형에 대한 내용은 기본 시각 디자인 책을 읽어보시면 되고 좋은 레이아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레이아웃 불변의 법칙' '황금 비율' 등에 대해 검색해보십시오.
저는 종종 잡지를 사서 틀을 깨는 레이아웃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전공자가 아니라는 가정 하에 쓴 포스팅이라 기초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컬러에 대해 잘 알아야 컬러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네요.) 색채 심리학, 색채 디자인, 색채 관리, 색채 체계, 조색과 배색을 공부하시면 좋습니다.
이론을 몰라도 색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론을 알아야 내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잘 하는 사람들은 결국 설득을 잘 하는 사람이더군요.
설득,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의 논리와 이치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시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그 말은 모든 감각을 건드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인간의 감각중 인간이 가장 크게 의존하는 시각을 주요하게 생각하고 디자인하지요. 그러므로 '시각' 에 대한 많은 심리적, 과학적 이론들은 가볍게라도 알고 시작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구글링해서 좋은 아티클과 책들을 찾아보세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되구요.
화가라면 종이와 펜으로 슥슥 그려내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지만 우리는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익혀야할 툴이 생겼다면 최대한 완벽하게 익히셔야 합니다.
'완벽하게 익히다' 의 기준은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특정 툴로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선(line) 하나를 만들더라도 '선' 툴을 사용하여 그려도 되고 '도형' 툴을 통해 픽셀을 조절하여 그려도 되는 것처럼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지요. 그리려고 하는 그 '선'이 해당 디자인에서 어떻게 사용될 것이냐에 따라 그리는 방법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림자를 표현하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고 불투명도를 주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형태를 만드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최대한 많이 알아놓으세요.
글쓰기와 맞춤법에 대한 내용은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하다가 넣은 이유는, 글쓰기는 차치하더라도 맞춤법 실력은 어느 직군에서나 신경 써야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맞춤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의 도움이 없어도 허용 맞춤법 정도까지는 쓸 수 있도록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오타는 절대 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텍스트를 대하셔야 합니다. 오타 내는 습관을 가지고 계시다면, 어느 날 편집 디자인을 하게 되었을 때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ㅠㅠ)
웹 위에 그리나요? 모바일 웹 위에 그리나요? 앱 위에 그리나요? 어디에 그리느냐에 따라 알아야 할 배경지식들이 상이해집니다.
저는 주로 웹 위에 그리고 반응형으로 모바일을 그립니다. 웹에 대해서 잘 알아야 웹에 대응하여 최적으로 잘 그려낼 수 있지요. 해상도, 컬러, 브라우저, 프린트, 쿠키 등에 대해 알면 좋습니다. 웹은 워낙 방대하고 빨리 변화하기 때문에 기민하게 소식을 듣고 공부하셔야 합니다.
만약 퍼블리싱까지 할 줄 아는 디자이너라면 컴퓨터 이론에 대해 알면 좋습니다. 개발자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서도 잘 아셔야 할 것입니다. 특히 협업과 애자일 프로세스에 대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스타트업 디자이너는 일당백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온라인? 오프라인? 판매처 생태에 대해서도 잘 아셔야 합니다. 그 생태에 따라 디자인을 해야 잘 팔리기 때문입니다.
산업군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회사의 산업군은 꽤 올드한 산업군이고 회사의 동료들은 30대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산업군에 대한 이해를 다 하지 못하여 실패를 했지요. 그들의 산업을 이해하고 타깃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계속 터득하라는 뜻입니다.
결국 결론은 '기술의 빠른 흡수' 그리고 '디자인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한다는 겁니다.
공부는 끝이 없고요, 공부 한톨 하지 않으면서 취업난이니, 회사가 별로라느니, 갈 데가 없다느니, 꼰대라느니 그런 말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들어본 바 그것은 제살 깎아먹는 말들이고 결국 잘 되는 사람 못 봤습니다. 그 자리에 있다가 도태되지요.
여러분, 공부하세요. 게임 하나도 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공부하는데 우리 업도 당연히 그래야지요.
마음에 불평 불만이 있으신가요?
학습의 연료로 태우십시오.
공부하기 싫다고요?
그러면 그렇게 사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공부 없이는 다른 데 가도 똑같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