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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브랜더 시내 Dec 12. 2020

좋아하는 마음이 정말 우리를 구할까

좋아하는 것을 진지하게 한다는 것에 대하여

내 안에는 살면서 답을 내리지 못한 문제들이 숙제처럼 남아있다. 대부분 답이 없는 문제들이지만 30년을 살았으니 내 나름대로의 답을 내려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만의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게으른 고민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한 고민들을 하는데 책들에서 얻은 지혜가 혜안을 줄 때가 많았다. 그 고민의 흔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올해 첫 번째로 ‘인간은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렸고,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차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과연 강점일까.’

나는 좋아하는 일만을 고집해온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공부도 열심히 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대엔 좋아하는 일이 뭔지 찾기 위해 꽤 오랜 방황을 했었고, 덕분에 대학도 뒤늦게 갔다. ‘대학에 들어가서 방황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하는 후회도 했지만,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생기기 전까지는 대학에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27살의 늦은 졸업 끝에 운 좋게도 좋아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뒤돌아보면 계속해서 좋아하는 일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강점이라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장 큰 정체성인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정말 강점일까에 대한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좋아하는 일만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인간의 행복 추구의 관점에서는 좋아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 그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해야 하는 목적을 매 순간 달성하고 사는 것일 테니까. 그런데 세상에 좋아하는 것만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좋아하지 않는 일을 업으로 한다면 그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좋아하는 일만 하다가는 생계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자체가 없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덜 싫어하는 일을 하는 차선책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보다 ‘긍지’라던지 ‘끈기’등의 좋은 강점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을 고집하는 사람은 성공의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다. 나는 신규 기업들을 만나서 신제품 관련 미팅을 주로 한다. 미팅을 하다 보면 ‘내가 좋아서 만들었어요.’라고 말하는 대표들을 종종 만난다. 진정성을 가졌을 확률이 높지만, 제품이 시장성이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실성 없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만든 제품은 시장성이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야 돈을 지불하는 것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하지 않아도 예측을 잘못해서 시장성이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문제가 되는 건 피벗(pivot)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토스(toss)나 배달의 민족도 여러 번의 피보팅 끝에 현재의 성공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좋아하는 것만 고집했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이 지점에서 좋아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내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사업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될 만한 사업 구상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이 가는 사업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 구상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면 시장조사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 끝에 돌아오는 반응 중에는 누가 봐도 될만한 사업 아이템이라는 확신을 준 아이디어들도 있다. (물론 될 놈인지는 해봐야 아는 것이지만) 결국 액션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좋아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미래에 다녀올 수 있어서 그 사업이 3년 안에 잘 될 것이 확실하고,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번다는 것이 확실해도 내가 하지 않을까? 아마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사업 아이템으로 선택한다면 나는 큰 열정을 갖고 임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업 아이템이 ‘안될 놈’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을 때 나는 피보팅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반려동물 사업을 하다가 가구 브랜드로 바꿀 수 있을까. 나와 사업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업을 살리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매우 불행한 상황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안될 놈’을 선택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안될 놈인지는 필드에 나가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집하려면 사업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좋아하지 않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두는 방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나는 좋으나 싫으나 좋아하는 일만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안고 가야 하는 단점이 아닐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강점으로 살린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내가 답을 내리는 데에 나침 표가 되어준 책들이다.


 1) ‘도쿄 R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

-바바 마사타카/하야시 아쓰미/요시자토 히로야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프리 에이전트’라는 워크 스타일을 도입한 조금은 특별한 도쿄의 부동산업자들 이야기이다. 기존의 부동산들과는 다르게 중개업자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매물을 찾아서 플랫폼에 감성 한 스푼 담아 소개한다. 부동산을 창업한 이들은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창업을 하였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팀으로 일하는 프리 에이전트를 지향한다. 프리랜서와의 차이는 운동선수처럼 공동의 목표를 갖고 팀워크를 다진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나가면 되고, 다른 좋아하는 일을 겸업으로 해도 된다. 즉,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사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꼭 사업을 잘 될 때까지 피보팅 해야 하는 이유가 없고, 오히려 처음에 그들이 모인 목적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규모를 작게 유지하는데 힘쓰고 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그래야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그려가며 열심히 일할 때, 웬일인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만나게 된다. 그러면 좋아하는 동료와 신뢰 관계 속에서 일할 수 있다. 또 일도 성장하고 동료도 드러나는 긍정적인 연쇄 작용이 조금씩 자연스레 일어난다.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일이 사업으로서도 온전하도록 전력을 다한다. 비전과 이미지가 있고 전략과 행동을 제대로 갖출 때 비로소 직업이 된다. 이를 지속하기는 더욱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주주의 이익을 위해 하는 일, 규모의 ‘성장’을 명분으로 열의 없이 하는 일이 잘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P54

이 한 문장으로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나에 대한 불안감들이 불식되었다. 좋아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때론 비효율적이고, 손해를 볼 수 있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매우 운이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고집하는 것이 내가 가진 강점인 이유는 그것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있을 때이다. 그 힘을 나는 특히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일에 대한 열의만큼은 자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마음을 모으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잘할 때 자연스럽게 돈이 벌린다.


2)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은 그녀가 10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며 겪은 일화들을 엮은 책이다. 나도 글을 지금도 쓰고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다. 언제나 내 글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누르고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 글은 하루아침에 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부지런히 생각하고 부지런히 써야 한다.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그녀는 처음에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썼다고 했다. 글쓰기 수업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결국 좋아하는 일보다는 생계가 더 중요했던 것일까? 책을 읽어보면 그녀가 글방의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인터뷰를 듣던 도중, 글을 잘 쓰는데 도움이 됐던 것이 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었다는 답변을 하였다.

“저는 그냥 반복해서 잘 된 스타일인데요. 사실 반복할 수 있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잖아요. 좋아하지 않는데 반복하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요즘엔 그냥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재능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 -라디오 인터뷰 중

꾸준하게 지속하는 힘도 좋아하는 마음에서 왔다는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용기를 얻었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보다 노력이 덜 든다. 나는 매일 책을 읽지만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이 내게 있어서는 노력이 비교적 적게 필요한 것과 같다. 즉,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방향을 틀어야 할 때에는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인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든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 단, 그런 어드벤티지를 갖고 있어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재능을 썩히는 것과 같다. 결국 다른 재능들과 마찬가지로 노력을 할 때에 빛을 발하는 강점인 것이다.

3)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 정지혜

이 책은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작가가 좋아하는 일을 고집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ENFP일거 같음)에게 소소한 공감을 얻고자 산 책이었는데, 짧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큰 깨달음을 받았다. 그녀도 책을 좋아해서 출판사에서도 일하고 서점 사장님이 되었지만, 좋아하는 것이 언제나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BTS 덕질을 하면서 삶의 지평이 넓어졌다. 이 책에서 BTS는 잊힐 때쯤 계속 나오는데 그 진지함이 귀여워서 웃기면서도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느껴져서 부럽다. 덕질을 하는 것이 삶의 힘듦을 이겨내는 방식이자 가장 사치스러운 행복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과해서 크게 체하고 난 뒤로부터는 삶이 전복되지 않도록 마음의 용량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있습니다. 요즘 제 일상은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일과 덕질과 산책.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없어도, 혹은 하나에만 치중해도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어요. 일 때문에 힘들 땐 덕질을, 덕질 때문에 괴로울 땐 산책을, 덕질이나 산책에서 얻지 못하는 즐거움은 일이 채워줍니다. 장 자끄 상뻬의 책 제목처럼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어요. -P.54


그녀는 좋아하는 일이 하나일 필요는 없고, 좋아하는 것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참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강아지와 산책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쇼핑도 좋아한다. 사람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한두 가지를 체할 정도로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이 많다 보니 노력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로 끝장을 본 저자를 보며 내가 과연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 본 적이 있나 반성해본다. 읽던 책이 재미없으면 바로 다른 책을 읽는 나는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사람에 가까웠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 강점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어려운 순간에도 간직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위해 반복적인 노력을 더한다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더 좋아할 수 있다면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만으로는 결코 강점이 될 수 없다. 좋아하는 것을 고집한다는 것이 강점이 되려면 적어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끈기 있게 끝내는 사람보다 더 끈질겨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을 한다고 말할 때, '전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랑스럽게 나의 강점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날까지 진지하게 임해 보고자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어른처럼 비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진지하게’에 방점을 두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좋아하는 일이 우리를 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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