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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 Jan 14. 2021

[책리뷰1] 복자에게

어른의 무게 


어른이란 사실 자기 무게도 견디기가 어려워 곧잘 무너져 내리고 마는 존재들 




작년 한 해 동안 영어 선생님, 숙소 운영, 육아를 병행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건강 이상으로 영어 선생님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오전에 주어지는 30분, 아이들이 자고 나면 밤에 주어지는 30분~1시간, 평소에는 수업 준비하던 그 시간이 이제는 나의 작은 쉼이 되었다. 그 시간에 요즘 핫한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요즘 소설에 머리를 한대 딩하고 맞은 것 같더니 이내 마음이 시원해졌다. 

때마침, 영국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서 선물이 도착했다. 영국에서 날아온 건가 해서 놀랐지만, '리브 레리아 Q'라는 용인에 있는 동네서점에서 날아온 책 선물이었다. 그 멀리서 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만나고 싶은 영혼의 쉼을 선사해줬다. 

<리브레리아Q>를 통해 영국에서 날아온 선물



복자에게 (김금희 장편소설)



<복자에게>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과 그 소송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의료원 간호사들이 어떠한 보호장치 없이 유해한 약품들을 빻다 보니 불임, 난임, 유산의 아픈 과정들을 겪어야만 했고 그 아픈 과정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보상받지 못했다.

작가는 이 힘든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거나 그 아픔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읽는 내내 복자가 누군지, 그 사건은 도대체, 왜-어떻게 일어났고 그 이후로는 자세히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그 자세하고 힘든 과정은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고, 그저 그걸 겪은 사람들의 곁을 다정하게 지키려 노력했다. 그 사건은 그저  당사자가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처럼,  저 멀리에 있는 것이라는 '현실의 거리'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음일까. 복자의 유년의 친구이며 주인공인 영초롱이 판사임에도 불구하고 복자를 실제로 돕지 못했던 것처럼..


소설에서는 자꾸만 부치지 못한 편지가 등장한다. 보낼 수 있지만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들, 위로와 힘이 되고 싶지만 감히 아픈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한 마음들, 실제로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들, 그걸 마주한 영초롱의 쓸쓸함...

현실의 거리는 슬프고 냉정했지만 여전히 편지를 쓰고 멀리서도 복자의 곁을 바라보려 애쓰는 영초롱의 다정한 마음이 희망처럼 다가왔다. 



실제로 최근에 '정인이 사건'이 일어났다. 입양아였던 16개월 정인이가 양부모에 의해 수차례 학대를 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건. 

학대 의심 신고가 3건이나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이 아이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양모는 목사-어린이집 원장 자녀에다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해 입양봉사단체에서 여러 차례 봉사하며 입양을 권고하기도 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결국 양부모는 과시욕이 심했고 남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 돈을 위해 입양을 했을 것이라는 여론이 일면서 이 스토리는 힘 있게 전국을 강타했다. 수만 건의 진정서들이 SNS의 힘에 힘입어 재판부로 발송되고 있고, '정인아 미안해' 인증샷들이 SNS에 도배되고 있다. 

진정서를 보내고, 정인아 미안해를 외치면 죽은 정인이가 돌아올까.. 수일을 맘 편히 자지 못했다. 꿈에서도, 일상에서도 정인이의 그림자로 인해 슬펐다. 

그저 지금 내가 마주한 아이들에게 잘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복자에게>에서 복자와 영초롱이 '어른이란 사실 자기 무게도 견디기가 어려워 곧잘 무너져 버리고 마는 존재들'이라고 슬프게 칭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영초롱이 그랬던 것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다정한 곁을 내주겠다고..




<복자에게>에서 만난 문장들

말하기 싫은 날이 시작된 건 이때부터였다. 
말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니까.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 했다
아름답게 분투했다. 
휴게점에서는 유독 계절의 변화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어른이란 사실 자기 무게도 견디기가 어려워 곧잘 무너져버리고 마는 존재들. 
슬픔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그중에서도 작가의 에필로그는 앞으로도 소설을 읽으며 계속해서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다. 



소설을 다 쓰고 난 지금,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
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선언보다 필요한 것은
그 조차도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삶이라고  다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는 그렇듯 버텨내는 자들에게 
기꺼이 복을 약속하지만 
소설은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어
이렇듯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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