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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희 Mar 25. 2019

책상을 채우며

5호님 출근하는 날

주말, X세대 출신 40대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문득 속으로 계산을 해보다, 설마 싶어서 손가락으로 꼽아봤다. 2000년 1월에 출판사에 들어왔으니, 20년째네. 언제 이렇게 됐지???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운 좋게 들어와서 여적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것도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출판사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스케일 큰 경험을 해보았으니 그 또한 운이 좋았다.

월요일, 그러니까 오늘 온라인 마케팅을 할 직원이 출근했다. 북스톤의 다섯 번째 구성원. 이로써 공용PC 책상을 빼곤 책상이 다 찼다. (왜 주위 분들은 항상 ‘북스톤 식구’라고 표현하실까? 그렇게 서로 각별해 보인다면... 성공적) 면접 때 질문마다 신나서 이야기하던 친구다. 모범답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생각한 말을 함으로써 질의응답을 대화로 바꾸어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눈이 반짝였다는 것이다. 면접에서 그런 눈빛을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 젊은 감각을 채워줄 거라 기대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 보는 감각이 늙을까 두려운 차에 배울 게 많겠고, 자극도 많이 될 것 같다.

주말에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5호님의 입사 소식을 알리니 손뼉치며 축하해줬다. “오~ 어엿한 중소기업~!” ㅋㅋ
“근데 말야, 수아 너랑 일곱 살 차이밖에 안 나. 엄마랑 스무 살도 더 차이 나” 했더니, JMT 같은 신조어 쓰지 말라는 등의 주옥 같은 조언을 주었다. 야, 그래도 명색이 편집자고 나이가 있는데, ㅈ자 접두어는 원래 안 쓰거든? ㅋㅋㅋ

아이들 말대로 쓸데없이 노티를 내면 안 되겠고 조심할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스무 살의 격차를 실감 못해서인지, 첫 채용이 아니어서인지, 4호님이 입사할 때만큼 엄청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다. 누군가의 첫 직장이라는 점에서 긴장되긴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의 시작을 함께한다는 성급한 보람이 더 큰 것 같다.
회사를 만들면서 했던 개인적 다짐 하나는, 신입을 뽑아 키우는 거였다. 물론 효율성 면에서 쉽지 않은 이야기이고 큰 회사에서도 잘 안 하려는 일이어서 ‘다짐’이라기보단 ‘바람’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이다. 신입은커녕 경력자도 잘 뽑지 않고, 작은 규모를 유지하며 필요하면 그때그때 프리랜서와 ‘프리’하게 일하는 것이 추세가 되어가는 것도 맞다. 주변에서도 다들 그 길을 추천했다. 더욱이 ‘똑똑한 사람들의 작은 집단’은 특히 우리처럼 변화에 기민해야 하는 콘텐츠업에 아주 잘 맞는 포맷이기도 하다.


단순함의 가장 좋은 친구 : 똑똑한 사람들의 작은 집단

로리의 경우는 단순함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를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다. 바로 ‘똑똑한 사람들만의 작은 집단으로 시작하라. 그리고 작게 유지하라’는 원칙이다. 사람 수가 늘어날 때마다 복잡함도 하나씩 추가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소규모 집단 원칙은 단순함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애플이 꾸준히 성공을 이어올 수 있었던 열쇠일 뿐 아니라, 양질의 사고를 원하는 모든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자비로운 초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평소 당신이 회의 자체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미친듯이 심플>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계 있고 누수 없이 일하려면 셋이서만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고충이 있었고, 그래서 어렵게 채용을 결심해서 4호님을 모셨다. 사장 셋인 회사에 용감하게 입사한 4호님은, 바라던 대로 할 말은 하고 무심해도 될 때는 적당히 무심하게 넘기며 성공적으로 수습을 마쳤다. 그러고도 또 사람이 필요해져서 면접을 보았는데, 뽑고 보니 신입이었다. 

채용을 결정하고 뒤늦게 내게 있던 다짐 혹은 바람이 생각났다.
이런 바람을 갖게 된 것은, 고마움 때문이다. 책에 관해서라곤 읽을 줄밖에 몰랐던 나를 누군가 뽑아줘서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시작을 도운 것처럼, 나도 신입을 뽑아서 누군가의 출발을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더랬다. 이를테면 거창한 포부라기보단 개인적인 은혜 갚음 혹은 부채감 같은 거다. 어렸던 때의 내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인재였다면 외려 이런 생각은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20년 전의 나보다 몇 백 배 착실하게 노력한 신입을 맞았다. 그래서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게 무안하기도 하다. 신입을 뽑으려고 뽑은 게 아니라, 지원자 가운데 가장 훌륭해서 뽑은 것이니까. 어느새 우리 업계에는 노련한 경력보다는 젊은 생각이 더 긴급해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업계에 젊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필요한 사람도 모시고 작은 다짐도 이루었으니, 이번에도 운이 좋다고밖에. 일단 서로의 1차목표는 북스톤 최대 자랑거리 ‘리프레시 휴가’를 가는 것으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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