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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희 Oct 04. 2018

근사해갈수록 근사해진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김민형, 인플루엔셜


‘왜’를 묻는 건 시간이 걸리고 성가신 일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는 단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게 남이 굳이 요구하지 않는 단계이고, 할수록 자기 머리만 고달파지는 단계라면 더욱 그렇다. 일단 내가 귀찮고, 남들이 번거로워지고, 전체적으로 느려진다. 비효율적이 되는 것이다. 일단 결정이 났거나 이미 정해진 프로세스가 있으면 고민보다 고(go), 밀어붙이는 것이 추진력과 일사불란함으로 칭송되기도 한다.
물론 지나친 좌고우면은 일 잘하는 자의 자세는 아닌 것도 같다. 하지만 효율성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쎄한 느낌’이 들 때에도 멈추지 못한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손들고 묻지 못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못하게 된다. 그러다 나는 게 사고다.
편집자 생활을 하면서 어지간한 사고는 다 쳐봤다고 생각했고, 그때마다 몸통 저 아래로 떨어진 간을 어떻게 다시 주워다 붙였는지 모르게 혼비백산하곤 했다. 그러고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고 어지간한 체크리스트는 몸에 붙어서 저절로 체크된다고 생각했는데... 사고의 세계는 끝이 없어서 이 나이 먹어서 올해 또 사고를 쳤다. 하필이면 일하면서 써본 가장 비싼 종이였다. 인쇄감리까지 보러 가서 샘플 확인을 하면서, 재단선끼리 이렇게 붙어 있던가... 하고 혼자 의아하고 말았는데, 그게 ‘쎄함’인 걸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다. 디자이너도 있고, 인쇄 전문가도 있고, 인쇄기장님도 있고, (그러나 의사결정자는 결국 나인데!) 그런데 다들 괜찮은 표정이니 괜찮은 거겠지 싶어 ‘잘 부탁드린다’고 ok를 했던 것이다. 인쇄샘플을 가져와서 두어 번 더 들여다보면서도 이 미심쩍음의 실체를 몰랐다가, 회사 와서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의구심이 현실이 되었... 그사이 인쇄는 다 돌아갔... 아, 더 말하지 말자, 어지럽다...

효율성,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방식이 대개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가끔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뼈저리게 느낀 부분도 이것이다. 계산기도 없던 시절에 과학자들은 세상의 작동원리를 밝히기 위해 관찰과 논리, 상상을 총동원해 숱한 가설을 세우고, 계속계속... 계산하고 검증해갔다. 여기에 효율성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심지어 본인 당대에 해결되지 않으면 훗날 누군지 모를 누군가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과학사, 수학사에 길이 빛날 업적의 상당수가 이런 비효율적인 프로세스에서 나왔다. 선대의 연구를 누군가가 받아서 증명하고, 혹은 폐기하고, 혹은 새로운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페르마의 원리가 제거하지 못한 ‘텔로스(목적성)’를 하위헌스가 해결했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두 행성이 서로 왜 잡아당기느냐?’라는 또 다른 텔로스의 문제는 220여 년이 지나 아인슈타인에 의해 설명되었다.

“결국 2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아인슈타인은 공간 자체를 물질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에는 ‘어떻게 전달되느냐,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됐느냐’ 하는 질문이, 아인슈타인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통해 전달되느냐’의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더 나아가 중력이 시간차를 두고 전달된다는 사실도 밝혀졌죠.
과학에서의 중요한 계기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과학에서는 답을 주는 것뿐 아니라 그 답의 부족한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죠. 어떤 종류의 질문에 대한 명료한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면 굉장히 새로운 질문을 끄집어내고 난해한 문제를 점차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즉 ‘부족한 부분’은 답을 찾기 전에 답을 찾는 데 필요한 틀을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발견들을 살펴보면 수학적 방법론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이들은 마치 바톤을 넘기듯 의문에 답을 내고 난제를 남겼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로써 그때마다 필요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가며 점점 명쾌한 이론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해결점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정확한 프레임워크와 개념적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책이 말하는 것은 ‘질문’의 중요성이다. 책 곳곳에 ‘왜’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 반복 강조된다. 한편 답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질문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왜 잡아당기냐?’와 같은 질문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질문을 하죠. 그런데 질문을 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 분명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령 x를 구한다고 했을 때 답이 만족스러운 답일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운 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뉴턴의 경우처럼 어떤 답을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으로 받아들이느냐 자체가 분명치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답의 틀’을 만드는 것 자체도 중요합니다. (...) ‘적당한 답의 틀(satisfactory framework for finding the answer).’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 어려운 질문들은 다 그런 식의 질문들이에요.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답을 모르죠.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답을 모르는 것’ 이상으로 더 난해합니다. 답을 모를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 제 생각에 이런 종류의 문제가 뉴턴의 이론이 전개되면서부터 대두되었던 것 같습니다. 즉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는 알지만 답 자체를 모르는 상황과, 답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사상의 틀이 없는 상황. 두 종류의 난해함에 부딪힌 것입니다.”


책 전체에서 가장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편한 관계가 아니라면 어떤 질문에도 긴장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수학시간에 칠판에 붙어 (답을 모르는 채) 수식을 적어갈 때의 느낌 같은 것ㅠㅠ 고2 여름방학 보충수업 수학시간 때, 같이 나온 아이들은 배당된 문제를 다 풀고 들어가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내 뒤통수만 쳐다보는 가운데 30분 동안 문제 하나를 붙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 예습과는 담 쌓고 살았으니 미리 문제를 풀어봤을 리 없었던 데다 문제집을 펴자마자 ‘이건 뭐래?’라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던 그 문제, 심지어 선생님도 ‘이 문제는 좀 복잡하지’ 하고 아예 칠판 절반을 그 문제풀이 공간으로 할애해놓았는데, 1분단 네 번째 줄에 있던 내 자리가 심상치 않더니 딱 그 문제에 걸린 것이다. 이참에 그때부터라고 주장하련다, 누가 뭐든 물어보면 마음속으로 침부터 꿀꺽 삼키기 시작한 것이.
하여튼 이런 사연으로 어려워하게 된 질문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상대방이 어떤 종류의 대답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진지한 조언인지, 명확한 사실인지, 가벼운 농담따먹기인지... 이게 모호한 상태에서는 대화가 땀이 나고 피로하다. 화법의 문제이거나 센스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배운 것은 ‘근사해간다’는 접근법이다.

“수학적인 사고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수라는 개념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제한적인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건전한 과학적 시각이란 ‘근사approximation’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중에 뒤집어지더라도 현재의 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는 것이죠. 애로의 경우도, 뉴턴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해가는 과정, 항상 바꿀 수 있는 것,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학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특히 창조적인 수학을 잘하려면 가설을 세웠을 때 그 가설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도 자꾸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주장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지 자꾸 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고장이 많은 큰 기계를 만들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수학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명료한 과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맨 처음에 했던 질문이 기억나나요?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그 질문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여전히 답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학에 대해,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에 대해 느끼고 있습니다. 더 탐구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무엇보다 수학이 이제 특정한 논리학이나 기호학과 같은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겁니다.
일상의 문제에서도 정답부터 빨리 찾으려고 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먼저 던지려고 할 때, 저는 그것이 수학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대범하게도 수학적 사고를 통해서만 우리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우리가 찾은 답이 의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즉문즉답을 할 깜냥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그걸 기대한 게 아닐 터이니(누가 내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답을 하는 것. 그렇게 하면 핀트가 안 맞아서 센스는 떨어지더라도 진정성은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ㅎㅎ
생각해보면 내게 질문 울렁증을 안겨준 (것으로 오늘부로 덤터기 쓴) 그 수학시간에, 내가 중간 쉬는 시간까지 잡아먹어가며 힘겹게 풀이를 이어가는 동안 그 누구도 짜증스러워하거나, 쟤는 왜 저렇게 못 풀어 하고 흉을 보거나, 자기끼리 잡담을 하지 않았다. 다들 숨죽이고 지켜봐주고, 겨우 결과를 냈을 때 함께 안도하며 답이 맞다고 입모양으로 말해주었다. 선생님도 내가 다 풀고 들어가도록 그 시간의 진도를 포기하고 기다려주셨다. 내가 잘 풀지는 못하더라도, 깜냥 안에서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준 것이다. 덕분에 그날 이후로도 난 수학을 싫어하지 않고 영어보다 수학을 더 잘하는 특이한 문과생으로 살 수 있었다. 그때처럼, 외운 공식이 없고 정답을 모를 때는 언제든 오류를 인정할 준비를 하고 근사해가자. 나도 그래야겠고, 사회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럴수록 진정성 있고 근사하기까지 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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