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지 말아야 할 명분과 당위성 그리고 자료조사
콘텐츠 기획자로서(부끄), 콘텐츠를 기획하고 구성할 때 늘 중요하다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다.
바로,
"그림이 그려지는가?"이다.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과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그림이 안 그려지면 진행하기 참 어렵다 말을 하니 무슨 그림이냐며 물음표를 띄웠던 모습이 생각난다.
"기획과 그림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을 우리가 흔히 보는 광고나 영화나 유튜브나 등등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마 쉽게 이해가 될 거다. 제작자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를 어떤 의도로 어떻게 전달했는지 한눈에 보이니까. 다만, 이 그림은 머릿속에서만 한정적으로 재생되는 거라고 보면 된다. 무언가를 떠올리며 상상하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이미지화를 시키는 내게, 그림이 그려지는지에 대한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그림이 순조롭게 전개되면 이 콘텐츠는 괜찮다고 만족하고 마무리를 짓겠지만, 중간중간 막히는 구간이 생기면 무엇이 문제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보수공사를 진행한다. 자료를 잘못 넣은 것은 없는지, 말을 잘못해서 의미가 다르게 전달될 뻔했던 건 아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것인지' 포인트가 명확하냐는 것이다.
충분한 설득을 위해서 갖춰야 하는 것들 중 제일 중요하다 여기는 게 바로 '명분'과 '당위성'이다.
모든 기획의 첫 시작점. 모든 것의 기본이면서도 때로는 종종 놓치는 부분. 정말 중요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차, 하고 놓치고 실수하는 지점이 이곳이다. 내가 기획한 콘텐츠가 어떻게 펼쳐질지 그림을 그렸을 때 제대로 전개되지 않는다면, 명분과 당위성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명분과 당위성 때문에 동료들과 서로 설득하느라 싸운 적도 참 많았다. 가장 최근에 참여했던 국가보훈처 캠페인 콘텐츠 제작 때도 그랬었다.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네버 엔딩 설득의 싸움. 하지만 안다. 이러한 싸움이
만들어 낸 결과는 절대 나쁠 리가 없다는 것을.
명분과 당위성을 입증할 수 있는 기초
설득을 하기에 앞서, 내가 가진 명분과 당위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게 있다.
바로 자료조사다.
"자료조사? 그냥 궁금한 거 검색해서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텐데, 맞다. 궁금한 걸 검색해서 찾으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찾으려는 사람이나 사건이나 사물 등의
1️⃣ 자료가 최초 출현한 지점에서부터 현재까지 모든 기간을 살펴보고
2️⃣ 연관되어 있는, 곁가지의 내용들까지 다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찾아낸 자료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상황들이 펼쳐졌고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 같은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동반되어야 자료조사는 끝이 난다.
자료조사 때문에 나도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었다. 나도 "궁금한 부분만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좋은 선배를 만나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을 들었다.
그때는 2009년이었고 구전으로 떠도는 괴담을 주제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당시 나와 한 팀이었던 메인 작가 선배가 나의 자료조사물을 보고 장문의 메일을 보내주신 적이 있었다. 자료조사를 왜 하는지, 자료조사를 통해 얻게 되는 건 무엇인지, 그래서 어떻게 조사를 해야 하는지. 선배의 메일을 받고 나서 얼굴이 어찌나 시뻘게졌었던지. 세상에서 제일 부끄럽고 민망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며 말이다.
메일함에서 선배가 보내준 메일을 찾아서 다시 읽어봤다. 지금 봐도 참 부끄럽다. 그때의 내가. 지금이야 선배가 말하는 것에 곱절을 더 보태어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지만, 그때의 나는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는 정말 애송이에 불과했었구나.
(지금 봐도 부끄럽다. 얼굴에서 열이 나는군.)
요즘은 콘텐츠를 넘어 여러 가지를(장르 불문, 종류 불문)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중인데, 혹시 내가 놓치고 넘어가는 것들이 있는지,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지, 내가 찾아보고 살펴본 자료가 충분한지 계속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출-퇴근할 때나 밥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일상의 모든 시간에. 아주 잠깐, 찰나의 시간이더라도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늘 마련된다. 그리고 그려본다. 이 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완성됐을 때 쫙 펼치고 보면 어떤 모양새일지.
내게 제일 행복한 순간은 '그림이 그려지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