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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당 Jun 22. 2022

그래서 어떻게 지내고 있냐면,

짧게 적어둔 메모들 하나씩 꺼내보기.

뭐라도 영감이 떠올라야 글을 쓰든 말든 할 텐데, 시간이 있으나 영감이 떠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정말 아무 생각 안 하고 볼 수 있는 유투브나 게임 같은 거에 모든 시간을 쏟고 있다. 사실 영감이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핑계고, 충분히 쓸 수 있는데 마음을 먹고 앉아서 이 창을 열기까지 왜이리 힘들까. 음, 일단 여유가 없다는 걸로 잘 마무리를 지어보려 한다. 역시 여유가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맞는 말이니까.


아무튼, 생각이 하나씩 솟아날 때마다 데이그램이란 일기 어플에 하나씩 적어두곤 하는데, 적어놨던 것들 중 오늘의 글과 맞는 메모를 하나 공유하려고 한다. "생각을 하면 위험해진다 하는데 결코 위험한 건 아니"라고 한 글이다.




내가 감지하는 나의 위험신호는 생각이 많아진다는 거다.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인간이니까 할 수 있는 정말 원초적인 고민을 제외한 부분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하나씩 솟기 시작하면 '아,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고 바로 알아챈다. 그리고 그저께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말로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뭐, 떠오르기야 하겠지만-곱씹는 걸 자주 하니, 안 떠오르려야 안 떠오를 수가 없는-올랐다가 금방 가라앉는다. 이게 혹시 체념과 포기의 한 형태인지, 한국인은 한의 정서를 품고 있으니 나 또한 그걸 따르는 중인 건지 했는데, 그냥 '그렇구나', 가만히 응시하기만 한다.


생각의 폭을 더이상 넓히지 않고 있다. 확장과 증대를 좋아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늘어뜨리는 걸 좋아하는 내가 더는 펼칠 여지를 주지 않는 기묘한 상황. 내 생각의 깊이가 얕아져서 그런걸까, 다행히 그건 아녔다. 나의 밀도는 여전히 높았고, 나의 농도는 여전히 진했다.


지금은 나는 그렇다. 피부에 직접 닿는, 살갗을 스친 이와 그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다. 이것 저것 첨언하는 게 아닌,  모든 상황 그 자체로 듣는 것에 집중한다. 귀가 아닌 온몸으로.


화무십일홍을 외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운동센터 가는 길목에 핀 들장미보고 설레는 모습이 참 새삼스러웠다. 늘 들고 다니며 생각을 다듬던 정을 내려두었다니. (여기서 말하는 정은 돌을 다듬을 때 쓰는 그 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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