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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당 Nov 28. 2021

2021년이 끝나기 한 달 전

12월을 앞두고 짧게 정리해보는 그간의 이야기.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먹는 오랜만의 집 밥. 사실, 집 밥이 아니고 외부음식이지만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으니 집 밥이라 적어보았다. 싱싱한 회와 엄마가 삶은 자숙문어와 화이트 와인까지. 이걸로 배가 차겠어? 더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무색해질 정도로 배가 터질 듯했다. 


 신나게 먹으며 나눈 얘기들을 곱씹어보자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제사를 위하여 산소에 내려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빠만 간다) 얼마 전 우리 집에 다녀간 이모의 일상 이야기와 '나'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는데, 결론은 혼자 지내도 좋으니 죽을 때 장례 치를 비용은 미리 마련해도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요일 대낮부터 소재가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얘기를 하나 싶은데, 뭐 낮이고 밤이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대수이긴 하겠냐고.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고, 해두면 좋은 거고, 여러모로 현명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아니,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나서 방에 들어가 본 첫 번째 유튜브 영상이 왜 드라마 <또 오해영> 클립들이냐고. 내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흘러들어 갔으면 저게 뜰까, 폰 스피커 부분으로 수집이 돼서 그게 맞는 걸로 뜬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진짜 사실 같긴 하다.) 에이 설마. 아무튼 엉엉은 아니지만 펑펑 쏟아부었고, 담아두고 있던 게 조금은 해소가 돼서 다행이긴 했다. 그래도 알고리즘이 참 못됐네, 못됐어.


 




 지난 회고 글에서 말했듯, '해보긴 해봤어?'란 물음의 대답은 네. 너무나도 해본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질리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해봤으니 쉽지 않아?라고 하겠지만, 창작보다는 단순 노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칫하면 단순해지지 않을까, 굳어버리지 않을까, 정녕 나는 이런 모습을, 이렇게 살아가는 삶을 원했던 것일까, 이 모든 것에 대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배움들을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미션캠프에서 진행하는 <메모리 캠프>도 있고, <카피라이터 캠프>도 있고. 카피라이터 캠프를 하고 나면 출판과 에디터 과정을 들을 예정인데, 이걸 듣겠단 얘기는 결국 독립출판물을 내보고 싶다는 어렸을 적 내 소망을 이룰 기회가 머지않았단 걸 뜻하기도 햔다. 생각만 막연하게 했던 걸 꼭 실천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는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careerly.co.kr/comments/38999?utm_campaign=self-share



 이 글을 쓰면서 지인에게 이 내용을 말하니, 가지고 있는 재주와 능력을 밑바탕으로 이렇게 뻗어나가는 건 굉장히 좋은 자세라며 또다시 내 사주를 봐주셨더랬다. 음. 앞으로 내가 이루어낼 목표에 부동산도 추가요(!)






 그런 중에, 26일 토요일에 다녀온 지인의 전시에서 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바라는 모든 것들로부터 소외되었다지만
다시금 안으로, 바라는 모든 것들의 품 안으로
들어갈 수,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푹 숙인 고개를 들었던 한 어르신의 이야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거 내 얘긴데? 하고 웃었지만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날 뻔해서
속으로 재밌는 생각 하느라 바빴다.

단절로 끝이 난 줄 알았는데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었다는 게,
그렇다면 나한테도 그 불씨가
아직은 남아있을까 물음표를 띄웠다.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고, 쉼표가 되는 
그런 날이 언제 올 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온몸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마음이 이리저리 휘청였던
오랜만의 전시 관람.

내가 나에게, 누군가에게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보여주길 바라는가


 확실히 나는, "갈망"하는 게 정말 큰 것 같다. 무엇을 갈망하는가, 무엇을 위해 갈망하는가, 왜 그래서 갈망하는가. 갈망의 대상과 목적과 이유는 늘 뚜렷하지 않았을 뿐, 추상적인 이미지로 늘 가져오고 있었다. 그래서일 거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에 대해 물어봤을 때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이런 표현 저런 표현으로 둘러둘러말했던 이유가. 

 이제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는 거고, 구체화시키면서 내가 더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실, 구체적인 단어는 나왔다. 입 밖으로 내뱉기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해서 못 꺼내고 있을 뿐이지.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람. 참 많이 노력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정말 또라이. 그런데 이왕이면 예쁜 또라이인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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