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늦은 밤에 시작된 회고와 현재의 이야기와 아무튼 여러 가지.
제목에서처럼, 브런치에 글을 안 남긴 지 60일이 또 훌쩍 지났다. 길든 짧든 뭐라도 적어 내려 가는 걸 좋아하는 내가 저만치의 간극이 벌어졌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생각이 나지 않아서다. 생각이 나려면 영감 또한 필요한데, 그 영감 또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을 할 수 있겠다.
"현생이 너무 바빴어요."
그렇다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난 건가요? 네. 음악 듣는데 불쑥, 머릿속에 문장들이 나열되더라고요.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 그래서 까먹기 전에 얼른 컴퓨터를 켰습니다. 물론, 문장의 나열을 유발한 음악도 '수동'으로 반복하고 있고 말이죠. (유튜브로 듣던 중이라, 반복은 수동으로 합니다.)
60일. 약 두 달 정도 되는 시간.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일단,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퇴사를 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모두와 똑같은 이유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이 회사에서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라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분명, 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누구라고..? 스스로 인지가 안 된다는 거였다. 일을 하면서 나는 어떤 형태인지 틈틈이 확인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다는 건 적색경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고, 빠르게 이직에 성공했다.
이제 이직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은 시점에 회사를 옮긴 소감을 얘기하자면,
"적색경보 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뛰쳐나오듯 급하게 한 퇴사였지만, 그래도 지난 회사에서 보낸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긴 '미운 정'이라는 게 있어서 다들 잘 지내는지 잠시나마 안부도 물었고, 내 위 상사였던 팀장님께도 20분의 통화로 짧게나마 안부를 전했다. 실은, 팀장님께 카톡으로 잘 지내시냐 물었다가 읽고 씹히는 바람에 연락 두 번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답 해야지 하다가 업무 때문에 잊고 지내다 겨우 생각나서 전화를 하신 거였댔다.
윤윤당 대리 잘 지내요? 새로 다니는 회사는 어때요? 여기는 요즘... 뭐 어떻게든 되겠죠. 이제 좀 안정이 되려고 하는데, 그러려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고.. 윤윤당 대리 그만둔다고 했을 때, 좋은 곳 나타나면 보내주는 게 맞을 것 같아서 보냈는데 아쉬웠어요. 윤윤당 대리랑 최근에 그만둔 주임님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이 사람들을 놓친다는 게 아쉬웠어요.
그니까~ 아쉬워하면 뭐해요 있을 때 잘해주셨어야죠,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하고. 저 다시 부르려면 연봉... 아시죠? 같은 소소한 딜도 넣어보고. 퇴사하고 처음엔 여전히 화가 났고, 분노도 하고, 측은지심도 느끼고 했는데 지금은 감정이란 게 없다. 뭐가 남았나, 두드려보았는데 텅텅 빈 소리만 난다. 약간의 얼룩은 남아있을 수 있어도 말이다.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사실, 이직하고 두 달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체성의 혼란 말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결의 혼란이다. 과거엔 모든 업무에서 제약과 제한이 있었고 무조건 하란대로 해야만 하는, 손발이 묶인 환경에서 오는 혼란이었다면 현재는 그 반대다. 손발이 묶이지는 않았다. 다만, 지향하고 일궈내야 하는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지의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오는 혼란인 것이다.
해결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거니와 이 때문에 가슴이 조여와 숨도 못 쉴 정도였고 불규칙한 두통도 동반되고 '아, 나는 여기서 끝인가.' 한계가 보이니 또 도망쳐야 할까. 그런데 나는 안다. 이 시점을 넘기면, 넘어가는 그 순간 내 눈앞엔 다른 세계가 펼쳐져있을 것이라는 걸. 그리고 알고 있다. 이 시점을 넘기지 못하고 도망쳤던 지난날들의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초라했었는지도. 그래서 새로운 포즈를 취했다.
어찌 됐든 뭐 있어, 내 뒤엔 길이 없고 나는 앞으로밖에 갈 수가 없으니 일단 걷고 보자. 후회를 하더라도 우선 해봐야 하든지 말든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지난 해피무브 24기 창단 기획을 했을 때 썼던 슬로건이 전두엽을 툭, 치고 지나갔다.
"해보기나 해 봤어?"
이게 떠오를 줄이야.
아무튼, 60일의 기간에 겪은 일들과 느낀 점을 하나씩 나열해보면서, 이렇게 회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회고 기록만 남겨야지, 하는 건 아니고.
방송작가 처음 시작했을 때랑 어떤 업무 스킬을 쌓았는지도 털어놔야 하는데. 쓸 건 많고 그걸 쓸 사람도 한 명이고 머리 굴려야 하는 사람도 한 명이고. 머리털 뽑아서 후- 불면 복제가 되는 머털도사의 분신술은 왜 만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걸까.
내 속에 내가 많은 만큼, 실존하는 나도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