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아 하나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힘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론 행복하다던 네가 왜 그렇게 감정의 요동이 치냐는 물음에, 일상의 나는 행복한데 일할 때의 나는, 사회 속에서의 나는 행복하지가 않다고 답했다. 나의 어제 생각 투어는 이런 이유로 시작하게 됐다.
사랑니를 아직까지 뽑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아픈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복하지 않은 내 상태를 사랑니라 부른다면 그만 앓고 싶단 얘기가 절로 나올 정도로 괴로웠고, 더군다나 이건 누가 풀어줄 수 있는,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어쩌지 못해서 화가 나는 것도 있었다. 묶는 것도 나고 푸는 것도 나고 해소시키는 것도 오로지 나니까.
그래서 명명하기를, 오늘은 '앓는 날'. 앓아야 하는 날. 이런 날엔 내가 가장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또는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걸 하는 게 제일 좋고, 그렇게 해서 고른 것들을 나열하면 하나는 진득하니 전시를 보는 것, 하나는 집에서 먼 곳으로 무작정 가는 것, 남은 하나는 위스키 바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시작으로 성수동 카페 온유를 들렀다가 상도동 공집합으로 마무리 짓는 생각 투어의 여정. 모든 감상을 길게 늘어뜨리자니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을 아끼지만, (여기 적지 않은 이야기는 제 마음속 서랍장에 있습니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내 안으로 골똘히 몰두했고, 몰두한 덕분에 소진한 에너지는 온유 사장님인 수진님과의 소소한 이야기로 새롭게 충전할 수 있었으며, (마치 불스원샷을 넣는 것과 같은. 그런데 운전면허 없음) 비우는 것과 채우는 것을 동시에 해내며 얼룩진 나의 바닥을 위스키와 활자로 닦아낼 수 있었다. 이걸로 전부 회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정이 됐다. 이것만으로도 성과는 있는 거다.
참 갈 길이 먼데, 그래서 그런가. 먼 걸 알면서도 쉬지 않고 계속 걸어서 그런가. 쉼터를 보고서도 '조금만 더 가지 뭐.' 하는 마음 때문에.
다 늦은 여름에 열병이라니. 크게 한 번 앓았으니 열꽃 한 번 피워내고 잔잔하게 지내자. 나는 그게 제일 맞는 사람이다.
채도와 명도가 높은, 쨍하디 쨍한 세상 속에서 초연하게 날갯짓하는 한 마리의 새가 되고 싶다. 저 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