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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당 Dec 30. 2022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 (1)

2022년 끄트머리에서 쭉 둘러보고 나니, 나 제법 광범위해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올해를 지나기 전에 나도 회고 좀 제대로 해보자고 머그잔에 커피 가득 내려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그런데 2시간이 훌쩍 넘어가버렸다. 2시간 동안 쓴 거라고는 달랑 제목 한 줄..?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문단 첫 문장에 적힌 그대로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정작 정리가 되지 않아 방황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쓸 때 떠오르는 영감 덕분에 후루룩 쓰는 게 내 강점이자 특기인데, 이걸 발휘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 그래서 종종 즐기는 의식의 흐름 나열법으로 하나 하나 되돌아보고 나는 대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보려 한다.






그동안 내가 어떤 직무로,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나열해 보자면,


TV 방송 프로그램 구성 작가 (2009~2018)


"연예인 많이 보죠? 어때요?"라고 진짜 많이들 묻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손에 꼽는 직업. 그래서 환상도 너무 크고 깨지면 받는 충격 또한 큰 직업. 현재, 방송가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작가 친구 중 하나는 나 덕분에 애초에 환상이 깨져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직업 가운데 유독 방송 관련 직업에 대한 환상이 큰 이유는 미디어에 그렇게 비쳤기 때문이지 않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PD, 작가들의 모습들만 보더라도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예를 들면 그사세 같은 드라마.. 오래된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여러분 세상에 저렇게 일하면 망해요.)


아무튼, 그래서 방송작가가 하는 일은 콘텐츠 기획자.  에디터와 비슷한 점을 많이 갖고 있다.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콘텐츠에 필요한 아이템을 서치하여 취재하고(+촬영), 아이템으로 무얼 알리고 싶은지 목적과 의도를 담아 스토리텔링을 하고, 보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가공하는 일.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하면,


스튜디오+VCR 종합 구성물일 때 (ex. 동치미, 알토란, 여유만만 등)

- 스튜디오 출연자 (MC, 패널) 진행 대본 작업 및 리딩, 케어

- 스튜디오에서 보여줘야 할 VCR 편집본 최종 체크, 준비 

- 스튜디오 세트 세팅 서포트

- 출연자에게 프로그램 진행 요구사항을 스케치북에 적어서 보여주기

- 출연자를 위한 프롬프터 세팅 및 진행

- (방청객이 필요하면) 동원 방청객 섭외

- 종합 구성물 제작을 위한 사전 자료조사


VCR 촬영을 해야 할 때,

- 출연 사례자와 라포 형성하기

    : 다큐멘터리의 경우,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사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모 PD의 실수로 내가 맡은 사례자와 첫 시작이 어긋났던 걸 떠올리면 눈물이...)

    : 교양 정보물의 경우, 리포터 및 출연하는 관계자들과 분위기를 한껏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옆에서 신나게 호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 영상 콘텐츠에 필요한 모든 장면들을 촬영하기

    : 추가 촬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한큐에 다 끝내야 합니다

- 영상 콘텐츠에 필요한 모든 인터뷰를 다 진행하기

    : 인터뷰이의 리액션도 함께 따둔다면, 적재적소에 다양하게 활용합니다

- 촬영 현장 연출 진행

    : 깔끔하고 수월한 촬영을 위해 작가에게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촬영 현장 사전 답사


오디션 등 서바이벌 프로그램일 때

- 참가자 입장 순서별로 체크, 동선 정리

- 참가자 시나리오 체크 및 리딩

- 참가자용 자료 (음원, PPT) 상태 체크

    : 출시된 MR이 없다면 원곡자에게 요청하여 구하기도 합니다

    : PPT는 문제없이 재생이 잘 되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 MC, 심사위원 대본 리딩 및 케어

- 서바이벌 진행 현장 세트 세팅

- (유튜브, V라이브 등 해야 할 경우) 송출 환경 체크 후 세팅

    : 송출 카메라 뒤에서 스케치북 들고 리액션, 멘트 유도하기

- 출연자 사전 인터뷰지 작성 및 인터뷰 진행 

    : 출연자의 역량을 체크하기 위해 출연자들을 5개 도시로 모이게 한 다음 3일만에 돈 적이 있습니다


야외 ENG 촬영물일 때

- 일기예보에 따라 바꿔야 하는 촬영 환경 체크하여 필요 소품 준비

- 출연자 (MC, 패널) 진행 대본 작업 및 리딩, 케어

- 선발대/후발대 나눠서 야외 촬영 현장 각각 세팅

- 현장 상황에 따라 장소, 인물 당일 즉석 섭외

- 출연자에게 프로그램 진행 요구사항을 스케치북에 적어서 보여주기

- 촬영 현장 사전 답사 및 동선 짜기(+시뮬레이션)


생방송일 때

- 출연자 (MC, 패널) 진행 대본 작업 및 리딩 (*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 방송사고가 날 뻔 했으나 출연자의 애드리브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 생방송 진행 장소에 따라 촬영 세트 세팅

    : 특히 야외에서는 비가 올 걸 대비하여 우비, 우산, 대본을 넣어 둘 클리어 파일 등 준비

- 실시간 송출 자막 작업


프로그램 송출을 위하여

- 영상 편집구성안 작업 및 영상 최종 체크

- 편집 완료된 영상에 삽입될 자막(카피라이팅), 내레이션용 원고 작업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 개설 시

- 기획 의도, 프로그램 소개, 출연자 소개글 작성


프로그램 마케팅 시

- 프로그램 홍보용 보도자료 작성 (+사진 첨부)

    : 홍보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베리에이션 가능


등등 이렇게 된다. 아, 하나 또 있었지 참. 프로그램에 필요한 재연물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직접 출연하여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유튜브에 설마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없는 것 같다. 아주 다행이다. 추운 겨울에 검은 립스틱 바르고 신정 네거리를 엄청 뛰어다녔었는데 말이다.)


방송작가가 이것저것 다 할 줄 알아서 업계에선 흔히들 '잡가'로 불렀는데, 요즘 말로 다시 풀어본다면 '제너럴리스트'와도 상통하는 것 같다. 두루두루 다 할 줄 아는 사람. 어느 곳에 두어도 원래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지내는 사람들. 최근 나에 대해 말할 때 '저는 제너럴리스트입니다'라고 종종 소개하는데, 내가 어떻게 제너럴리스트로서 살아가게 됐는지 그 역사의 시작점이 여기였구나.


그렇게 방송작가로 지내기를 10년. 고자극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치일 대로 치여 무너져 내린 멘털과 건강 등등 이러다간 내가 정말 사라지고 말 것 같단 생각에, 이곳에서 조금은 거리를 두는 계획을 세웠고 그대로 진행했다. 방송작가가 메인 잡이었다면, 이를 서브로 두고 다른 것을 메인 잡으로 하자. 그래서 택했던 직업, '프리저브드플라워 플로리스트'였다.






프리저브드플라워 플로리스트 (2017~2020)


프리랜서라는,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 자유노동자로서 겸업금지 조항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곁들여도 노터치 노 상관. 그래서 지금 시기엔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살려보고 싶어 프리저브드플라워에 손을 대보기로 했다. 생화로의 접근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나, 꽃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 꽃으로 공예작품을 만들고 싶어 프리저브드플라워로 방향성을 잡았다.


(*프리저브드플라워 플로리스트로서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sense-it/23


크든 작든 사업을 시작했을 때 70%는 망한다는 얘기를 나 또한 들었었다. 시장 고객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업장의 주체인 내 판단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나오게 되는 결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평소 프리저브드플라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구매하는 작품도 만들긴 하지만, 나 스스로 색감에 꽤나 예민한 데다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된 프리미엄 작품을 만들어서 마니아 층을 만들어보자고. 그래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프리저브드플라워 작품 제작

- 기본 디자인+주문자 맞춤형으로 제작 (+단체 주문)

- 하지만 대다수가 "사장님이 알아서 예쁘게 만들어주세요"였습니다


가수, 배우(영화, 뮤지컬 등), 탤런트, 셰프 등 유명인 조공 선물 제작

- 사랑해요 K-POP


프리저브드플라워 강사 초빙

- 공공기관

- 사내 동호회


프리저브드플라워 플로리스트 자격증 수업

- 생화 겸임 프리저브드플라워 플로리스트 배출


프리저브드플라워 원데이클래스 운영

- 수강생 개인 맞춤형 클래스 진행


인테리어 컨설턴트 플라워 파트 진행

- 공간에 맞는 프리저브드플라워 인테리어 소품 제작

- 지금은 사라진 배민키친에도 제 소품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입점

- 아이디어스

- 웬지



이미 형성된, 프리저브드플라워의 견고한 층을 뚫고 진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녔다. 내가 정착한 동네에서도 프리저브드플라워를 하고 있는 분들이 몇은 계셨으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나름 계산을 하고 남산 아래로 온 이상 내 브랜드 이름은 알리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2년 9개월을 열심히 달린 결과, 내 브랜드 이름은 확실히 알릴 수 있었다. 동네 이름과 프리저브드플라워를 검색하면 제일 첫 페이지에서부터 보였던 게 나였기 때문이다. 수익적인 면에서는 성과가 좋지 못했다. 근근이 월세를 납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벌었으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다른 수단이 더 필요했다. 때마침 같이 일했던 방송작가 선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며 프로모션 마케팅 대행사 한 곳을 추천해 줬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2019년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됐다.



(*다음편에 계속)

https://brunch.co.kr/@sense-i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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