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친구를 문안하는 방법
“부조를 못하면, 장례에 얼마가 드는지 묻지 않는다.”
[예기禮記] 중 곡례 상
201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무르Amour](미하엘 하네케 감독)는 병으로 늙어가는 일상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다. 치매 걸린 아내 안느를 조르주는 최선을 다해 돌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간병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조르주는 현실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는 달팽이 걸음처럼 조금씩 나빠지는 안느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현재를 망각한 아내와 미래를 상실한 자아 사이에서 조르주는 그 어떤 과거의 기억으로도 행복하지 않다. 살과 뼈는 있으되 정신은 부재하는 유령처럼 그는 애써 삶을 이어간다.
어느 날, 딸 에바가 찾아온다. 에바는 엄마를 보고 질질 짜고는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도대체 아빠는 생각이 있어요? 왜 엄마를 저렇게 놔두는 거예요? 왜 엄마를 위해 더 애쓰지 않느냐고요!”
자식들이란 받기엔 능하나 주는데 젬병이다. 일일이 답하기도 지친 조르주는 입을 다문다. 말해 봐야 딸이 무슨 대책을 내놓겠으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간병을 해 줄 것도 아니고 시간을 들일수도 없는데.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비록 식사 때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시간은 권태 속에 흘러가지만 조르주는 지금도 안느를 사랑한다. 조르주의 하루는 안느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안느를 학대하는 간병인을 쫓아내면서 “너도 나중에 병들어 수족 못 가눌 때 너 같은 X 만나라!”고 일갈한다. 이런 게 사랑이다.
그럼 딸 에바는? 1년에 한 번 방문해서 잠도 자지 않고 휙 가 버린다. 그러면서 말은 많다. ‘아빠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 ‘왜 더 좋은 방법을 쓰지 않느냐’, ‘더 좋은 의사를 찾아가라’...엄마에게 진짜 필요한 액션은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떠들 시간에 성인용 기저귀라도 한 번 갈아 주든가.
[예기]는 중국 유학자들의 다양한 주장을 담은 책이다. 고리타분한 제례 양식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도 담겨 있다. ‘곡례’편에 실린 위의 글은 한 마디로 “행동을 못하겠거든 입을 다물라”는 의미다. 위 문장 다음에 이런 말이 있다.
“문병하면서 부조할 수 없을 때는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으며,
여행자를 만나 자기 집에 재울 수 없을 때는 잠잘 곳이 어딘지 묻지 않는다.”
참 지당하신 말씀이다. 실천을 못하겠으면 말을 마라. 내 절친은 지금 암 말기로 고생이다. 그를 찾아온 이들이 다양하게 행동한단다. 병원을 알아봐 준다, 의사를 바꿔라, 무슨 무슨 민간요법을 써라...내가 그라면 제일 좋은 문안 방법은 조용히 와서 현찰이 든 봉투를 놓고 가는 일이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몸살이다. 내가 기침 한 번 했다고 ‘국가기관에 신고하라’는 오지랖 넓은 이도 있다. 차라리 말없이 마스크를 한 장 주든가.
내 주변에도 보면 자기가 돈을 낼 것도, 참여할 것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 말 많은 인간들이 참 많다. 행동은 안 하면서 그저 입으로 떠드는 인간들. 빗자루 하나 들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살자”는 인간들. 회비 한 번 안 내면서 조직의 앞날을 논하는 인간들. 부자들 밑 닦아 주느라 바쁘면서 입만 열면 ‘국민과 조국을 위해’를 외치는 인간들. 그리고 명절이면 와서 꼭 한마디씩 하는 친척의 얼굴을 한 타인들.
딱 한 마디만 하겠다. “Shut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