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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Sep 26. 2018

남편관찰일기_180926

아픈 대화

어제 아침 6시반 경, 남편은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엄마 집에는 혼자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혼자 왔니?”

“생신날 같이 밥 먹었잖아” 태연하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전날 밤, 한참을 울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남편은 왜 우냐, 응급실 가야되냐, 관심을 보였지만 전의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길 위해서 그러신 것 같아?”

남편과의 대화를 곰곰히 곱씹어 보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엄마가 명절마다 동생과 조카들이 있는 제주로 가셨던 것은 나를 위한게 아니었다. 이혼한 후로 적적한 명절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였다. 내가 결혼 후 맞이한 첫 추석에도 그랬고, ‘이번엔 안 가면 안돼?’ 라고 말했던 지난 설에도 엄마는 제주로 떠났다. 그 덕에 우리는 아빠만 찾아봬면 되는 단출한 명절을 보내왔다. 올 추석에 엄마가 집에 계신 것도 상황이 그래서일뿐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가능했다면 엄마는 또 떠났을 것이다.


“자기도 할 만큼 했어.”

내가 미처 받아들이고 쳐다보기 싫었던 부분을 그가 짚어주었다. 엄마는 무조건 나를 위해 사는 분이라고, 나를 무척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서른이 넘었으니 부모의 사랑 어쩌고 하는 말은 대수롭지 않다고 넘기며 살았다. 그런데  참 아프게 찔렀다. 사실이라서, 맞는 말이라서 비참했다. 엄마를 향한 그의 날선 감정은 나를 대신한 것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대화, 아픈 대화, 부끄럽고 비참한 마음에 대한 대화. 이번 한 번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들.


그가 나의 부모를 보듯 나도 그의 부모를 본다.

우리의 부모는 당신들 살기에도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무관심했거나 사랑의 온전함을 갖추지 못했다. 당신들도 모르게, 때로는 이기적이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게 했다.


오늘 저녁 그는 엄마를 모셔와 저녁을 먹자 했다. 멀리 항구에서부터 살아있는 꽃게와 새우를 사와서 그것들을 다듬어 쪄내고, 라면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배웅을 했다.

그와 나의 대화의 결과인지, 괜한 미안함 때문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고맙다. 전의 감정을 감춘 채 그 모든 것들을 해내는 것이 꽤 많은 수고로움이 필요하며, 쉽지 않은 사람인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나로서는 아프지만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얻은 다툼과 화해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큰 숙제를 얻기도 했다. 앞으로 원가족과 내 가족 사이에서의 포지셔닝에 대해, 그와 나의 내면 아이에 대해, 그리고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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