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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Sep 24. 2018

남편관찰일기_180923

본전 또는 역지사지

이번 명절은 평화롭게 넘어가나 했다.


매번 명절 때마다 시가에 언제 내려갔다 언제 올라오느냐로 신경전을 벌이고 올라오는 고속도로에선 말다툼을 하기 일쑤였다. 여섯 번의 명절이 그렇게 지났다.


자궁근종으로 인한 새벽 응급실행과 잦은 통증 덕에 시부모님은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고 집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친정가는 문제로 말다툼을 하게 될 줄이야.

음력 8월 13일 친정엄마 생신에 저녁 외식을 했다. 나는 추석 다음날인 내일, 아침이라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남편은 불편하다며 싫다고 했다. 생신날 저녁 먹었지 않냐면서.


당연히 나는 지난 여섯 번의 명절과 시가 부모님 생신에 1박 2일로 고향에 내려갔다 온 나와 남편을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친정이 가깝다는 이유로 생신이고 명절이고 밥 한 끼 먹는게 전부인데...생신과 명절이 3일 차이 난다고 밥 한 끼로 퉁 치려는 모양새가 제법 얄미웠다.

나로서는 억울하기도 하고 이 불공평함에 대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불편해, 안 가’ 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추석 연휴에 시가에 안가는 것으로 어제부터 오늘까지 한숨을 푹 푹 내쉬고 뚱 한 것도 못마땅했다. 어제 저녁 시어머니께 내가 전화를 드리고 나서야 좀 풀리는 듯 보였다. 오늘은 명절에 고향 안가는 사람을 비꼬는 듯 말하면서 어른을 안 찾아뵙는게 습관이 되면 안된다고 한참 설교를 늘어놓더니 막상 친정에 가자고 하니 돌변해 버리는게 너무도 위선적이라 역겹기까지 했다.


내가 당신 부모에게 한 것을 생각해 보라고 역지사지를 말했더니, 본전 생각 나느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다. 지난 3년 간 그래도 알아주겠지, 하면서 지내온 시간이 본전 이라는 말 앞에서 아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허무하다. 앞으로 본전 이야기 할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남편에게, 앞으로 명절은 각자의 집에서 보내자고 결론을 내버렸다. 이게 아닌데...


원가족과 내 가족을 분리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 왔으면서, 정작 똑같이 억지 강요를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싫고, 자기 가족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남편도 싫다. 이런 시기가 어김없이 매년 찾아온다는 것도 싫다.


뱃속 아기에게 안 좋을까봐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지만 이미 영향이 다 갔을 것 같아 속상하다. 이럴거였으면 아프건 말건, 시가도 가고 친정도 가고 하는건데 모든게 꼬여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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