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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ug 31. 2018

남편 관찰일기 180831

자발적으로?

친구 부친상이 있다고 아침에 검은 옷으로 차려입고 나간 그다. 마치 빈소가 시댁 근처라고 해서, 편도 2~3시간은 걸리는 거리니 문상 갔다가 부모님댁에서 자고 내일 오라 하고 배웅을 하였다.


아홉 시 좀 지났나? 모르는 전화번호가 떠서 안 받았는데 계속 울리기에 받았더니 핸드폰을 집에 놔두고 출근을 했단다. 다시 가지러 온다고...

회사에서 바로 가면 빠른데 핸드폰 때문에 다시 돌아오려니 짜증이 좀 났을거다.

다섯 시 반에 핸드폰을 가지러 온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사서 보내려고 했더니 저녁을 먹고 가잔다. 애매한 시간이긴 하다.


저녁 먹으러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가 한 마디를 건넨다.

“이럴 때 그냥 같이 내려가서 자기는 집에 있고 나는 갔다오고 그러면 좋은데, 이런 거 결정할 때 일일이 동의 구하고 허락받아야 하는게 좀 그렇다.”


좀 그렇다고 했는지, 싫다고 했는지, 귀찮다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요지는 나의 동의없이 결정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게 짜증난단 얘기. 부부 간에 합의와 동의를 구하는게 당연한 것인데 귀찮고 불편하단 불만. 불만을 이야기할 뿐 이제는 혼자 결정한 후 통보하는 건 아니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봐야할까?

“나도 자기 허락없이 엄마나 조카들 오라고 안 하잖아? 자기 불편할까봐 최대한 안 마주치게 배려했는데?”

정말 몰라서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번엔 강조를 해 어필해 보았다. 그의 논지가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한다.

“불편해도 마주치고 만나고 그러는 거지. 그럼 그냥 게속 이쪽 따로 저쪽 따로 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걸 눈치껏 알아서 맞춰주었더니 좋아할 땐 언제고 딴소리를 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맛있네! 근데 와 이러게 매워 하아~ 하아~”

오늘따라 그는 좀 유난스러울 만큼 큰 리액션을 한다. 뭐지 저 어색함은. 그래 내가 한 번 숙이자.

“같이 내려갈까? 자기가 가자고 하면 갈게”

“됐어~ 자발적으로 가고 싶으면 가고 아님 말고.”

‘자발적으로’ 라는 단어는 회사에서 강제 봉사활동부서별 할당인원 채울 때나 듣던 말인데. 어쩌란 건지......

“자발적으로 하면 재밌고, 억지로 하면 재미없잖아?가기 싫으면 가지마~”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시댁 가는건 이러나 저러나 재미가 있는 일은 아니다. 마음대로 하라니 고맙긴 한데 저렇게 묘하게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 “같이 갈까?” 하고 나는 또 물었다. “그냥 쉬어~”

결국 집에서 쉬면서 있지만 내내 마음이 무겁다.

헤어질 때 서로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고 가벼운 입맞춤으로 인사을 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서운함이 나의 마음에는 찝찝한 불편함이 남았을 거다.


그는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치사하다고 느끼는 걸까?

나는 내 의사결정권을 그에게 넘기려고 하는 걸까?

결국 둘다 마음이 가벼운 쪽을 택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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