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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Nov 12. 2018

마흔의 임신_17

수능과 D-80

며칠 후가 수능시험일이다. 

나의 디데이는 80일 앞으로 다가왔다. 출산을 80일 앞둔 나의 심정이 딱 고3 때의 그것과 닮아있다.


고3 때도 수능날은 다가오는데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국영수를 더 봐야 하나, 암기과목을 더 봐야 하나, 오답노트를 봐야 하나, 아는 것을 복습해야 하나, 모르는 것을 더 파야하나...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했고 신경이 예민해졌다. 

되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이라는 가정과 그럴 수 없단 걸 아는 현실 속에서 갈팔 질 팡 우울했다.


지금도 그렇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나의 디데이가 압박을 해오는 기분.

임신인 걸 알았을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쓸걸.

매일매일 태담을 정성껏 해줄걸.

매일 클래식을 듣고, 태교동화를 읽어줄걸.

임신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미리미리 좀 끝내 둘걸.

휴직을 하면서 계획했던 일들은 쌓여만 있고 시간이 제 속도대로 무심히 흐른다. 

출산 후에는 못할 것만 같은 일들은 이제 정말 못하는 건가 싶어 아쉽기만 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질 나와 남편의 인생은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할지 아직 계획도 못했는데...

솔직히 마냥 기쁘고 들뜨고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임신이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러다 산후우울증이 오는 것이구나)


알고 있다. (되돌아 갈 수도 없지만) 되돌아 간대도 더 나아질 것은 없음을. 

재수를 하면, 1년의 기간은 나를 변화시킬 줄 알았다.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를 줄 알았다. 재수 기간, 고만고만하게 공부하고 고만고만하게 지냈고 성적은 비슷했다. 

휴직 초기 3월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지금보다 더 잘 지내진 못할 것이다.(라는 걸 알고 있다.) 

지금 이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할 일은 이 무기력과 생산성 없는 고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간을 길게 보낼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법을 찾아 나를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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