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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18. 2015

야생 고양이#31  <남아공> 아프리카와의 이별

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구정: Lunar new year

아프리카 여행 중 구정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코코Coco의 큰 딸은 스와질랜드Swaziland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 한 분을 소개해주었는데,  그분은 구정이라 나를 한국인 모임에 초대해 주셨다. 20여 명이 모인 자리, 오랜만에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국어가 어색하다. 타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라 더욱 반갑다. 예쁘게 차려 입고 모임에 온 교민들과 젊은 선생님들을(교육청에서 스와 질랜드로 파견 보낸 20대 선생님들) 보니, 까맣게 타고 옷 가지도 변변찮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한국의 것이 더욱 한국적으로 다가온다. 김치와 잡채 그리고 전을 먹을 때 거의 눈물이 쏟아질 정도의 향수가 찾아온다. 내가 얼마나 한국 사람인지,  가슴 속으로 고향의 봄을 부르며 마치 10년은 타향살이 한 사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날 스와질랜드에 있는 한국인은 다 모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한국인의 살아가기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내가 너무 여행에 잠겨 있는 것일까? ‘현실’이라고 정의된 틀을 오랜만에 듣는다. 귀국을 하는 날에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신념

만지Manzini에서 잘 없는 버스를 오래 기다려 3시간 정도 이동한다. 꼬불꼬불 길을 타고 올라가면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양질의 유치원 교육, 에이즈 관리 등을 운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든 종교 기반한 지역 학교/센터가 있다. 스와질랜드의 작은 마을에서는 만지니와 같은 커다란 마을과 다르게 많은 것이 부족하다. 그 곳에서는 아이들 교육과 그 지역 에이즈 환자들 관리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태권도를 하는 스와지 어린이들은 예의와 인성을 키우는 특별한 교육을 이곳에서 받는다. 그곳에 있는 HIV 보균자인 아이는 작고 연약하다. 주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하는 에이즈군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척박한 삶에서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묵묵히 자신의 날을 버티고 다시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


HIV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바이러스


주위 사람들을 담담히 위로하며 생을 바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 이종교에 기인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신념에 따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선한 종사를 하는 사람들, 자신 의사적 생활을 많이도 내려두고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 신념을 따라 사는 사람의 결단력을 느낀다. 무조건 주고 희생하고 인자한 마더 테레사의 이미지가 아니라 겉보기에 무뚝뚝하고 차갑지만 절도 있고 확실한 사랑과 배려의 행위가 때로 더 깊을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South Africa은해방을 늦게 한 편이라 백인과 흑인이 공존하는 나라이다. 인근 국가에 경제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주고 있고, 그 만큼 다른 나라 노동력의 유입/불법체류자인구가 크다. 집집마다 아주 높은 담장과 그 담장 위에 가득한 철조망이 이방인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 무수한 대형 쇼핑몰과 세계적인 패스트 푸드 음식점들이 익숙하면서 낯설게 다가온다. 서구화된 현대 도시에 온 것이다. 닭과 소의 울음 소리에 깨어나던 시기가 지나가 버렸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실내 활동을 이어간다. 요리, TV 시청, 여행자들과 이야기 등 쾌적한 환경 속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정리하는 마지막 시간을 가진다.


Apart-head: 머리를 구분하다 : 인종차별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아공 역사에 중요한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Apartheid Museum)을 방문한다. Apart-Head 인종을 구분해서 서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는 과거 정책의 역사를 담은 곳이다. 그곳은 철저히 분리되었던 흑인과 백인의 삶의 터전 구분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인간의 권력싸움, 부족 생활과 식민지 생활, 수모와 노예의 시기, 그 모든 결과들 끝에 해방, 그리고 인권운동, 자유와 평등을 향한 몸부림이 지금 21세기의 정체성을 이룰 수 있게 한 것이다. 현란한 티셔츠, 사치스러운 자동차, 쾌적함과 편리, 이 정도의 평화가 오기까지 얼마나 긴 피비린내가 지속되었을까. 역사들을 잊는 순간 가치를 향한 과거의 노력과 희생은 그저 ‘있었던’ 것이 되어 현재를 감사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아프리카 여행을 정리해주듯이 그곳에는 흑인 역사의 정리, 그리고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에 대한 이해와 현재 역사 진행 중인 투쟁까지 담겨있다.

 


데니스Dennis는 프레토리아 숙소에서 만난 40대 백인 남아공 사람이다. 남아공에 있는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역사 때문에 또 쉽게 그 사람을 ‘침략자의 자손’ 등 역차별적 시선으로 보기 쉽다. 그는 자신은 그 옛날에 배를 타고 남아공에 온 게 아니라, 남아공에서 태어났으므로 남아공에서 죽을 남아공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고유한 역사나 환경을 배제한 채 누군가 만들어 놓은 ‘목록’ 혹은 ‘잣대’를 가지고 측정하는 오류를 범하기는 쉽다. 이제는 아프리카 사람이 흑인이어야 한다는 정의 자체가 또 하나의 선입견이 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데니스는 그 기간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기 안에 영혼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수많은 죽음을 보고 더 견딜 수 없을 때에 전역을 했다. 그 공허한 눈에서 그가 가진 공포와 슬픔을 읽을 수 있다. 어떻게 생긴 누구이든 간에 그 사람의 마음과 눈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인종과 출신보다 중요하다는 사실.


작별

커다란 도시,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파크역Park Station, 그 도심 사이에 시장통, 백인으로서 남아공 사람, 세련되고 높은 담장에 내재된 커다란 경계심이 뒤섞인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던 ‘도시’ 요하네스버그를 떠나면서 아프리카를 떠나고 있다. 괜히 기분이 짠해진다. 아프리카는 피상적으로 접했던 짧은 몇 가지 단어들과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로 정의할 수 없는 지독히 인간다운 사람들의 땅이다. 내게 다음 아프리카 여행이 있다면 아마 오랜 세월이 걸릴 재방문일 것이다. 또 미래를 기약하며 떠나간다. 아프리카 100일 여행의 여정을 마치려 한다. 말라위의 상처와 모잠비크의 진흙, 수 많은 팔찌와 말라위 시계줄, 에티오피아 목걸이가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배운 것의 가치는 굉장하다. 자연스럽고 확실하게 떠나간다. 이별은 많이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무엇이다. 그 잊을 수 없는 모든 순간에 깊은 감사를 보내며. 당신들의 기쁨과 환호와 고난과 좌절, 눈물과 공감, 분노와 무기력, 여유와 부드러움, 강인함과 개성들까지 애정을 보내며.

안녕 아프리카.


이미 떠난 것들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지. 고독할 때면 별의 문자를 배웠지.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완전히 아프리카와 작별한다. 상처 입은  온몸은 소리를 지른다. 상처가 난 자리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인지 진물을 품고 크게 부풀어 오른다. 나아지는 것인지 악화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하얗고도 건조하게 남겨진 손가락이 처량하다. 영문도 모른 채 1시를 맞는다. 피곤이  온몸에 적셔있다. 해가 내려 앉는다. 다시 콜드 플레이 음악을 틀어 시간을 비틀고 슬쩍 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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