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콘크리트에 천장에는 정사각형의 최신형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우드 실링팬이 느릿느릿 돌아간다. 계절의 변화가 오롯이 느껴지는 통창에는 옆사람이 조금 부스럭거려도 영향을 받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영역인 네모난 책상이 있다. 책상은 새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오래 사용하던 느낌이다. 책상과 잘 어울리는, 오래 앉아 있어도 편안한 의자가 있다. 전체적으로 우드, 아이보리, 싱싱한 식물의 조합인데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소한 원두냄새와 빵 굽는 냄새가 잔잔하게 공기 중을 부유한다. 전문가의 손이 닿은 공간은 아닌데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듯 신비한 곳이다. 찾아가기 힘든 오스트리아 어느 마을의 농가주택 거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책장에는 누군가 고심해서 고른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어서 작업하다가 막막할 때 언제든 펼쳐보며 영감을 얻고 시공간을 이동할 수도 있다.
공간 한쪽에서 그루밍족 홍님은 오늘도 잘 차려입고 심혈을 기울여 커피를 내린다. 탱님이 막 도착한 책 택배박스를 들고 오다가 턱에 걸려 우당탕 넘어졌는데 옷을 툭툭 털고 일어서며 배시시 웃는다. 책 판매 공간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손님들이 자유롭게 앉아 책을 구경하고, 작업 공간에는 일곱 명쯤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작업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미팅을 할 수도, 편하게 전화통화나 줌 회의도 할 수 있다. 원한다면 주민들 누구나 다양한 모임을 열 수 있다. 모임 중에는 실패하는 모임도 성공하는 모임도 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첫번째 공간과 같이 전시도 매월 이루어 진다. 오후 4시쯤 배가 고플 시간이면 탱님이 직접 구운, 모양은 없지만 맛있는 휘낭시에를 간식으로 건네준다. 단골 작업인들이 그런 공간에서 하루종일 작업에 몰입하다 어슴푸레 저녁이 되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개운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1년에 한번은 작업인들과 썸원스페이지 혹은 제주, 태백으로 여행을 떠나고, 작업인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은 밤가시마을 고양이가 사는 호프집 향단이네서 참았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회식을 한다.
"자리에 앉는 동시에 영감이 마구 떠오르는 책상이면 좋겠어. 감각 있는 예술가가 앉아 있다가 방금 자리를 뜬 것 같은 그런 책상 말이야. 아니면 손님들에게 직접 책상을 꾸며 볼 기회를 주면 어떨까?"
홍님은 비현실적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홍님은 공간의 회전도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런 책상이면 손님이 하루종일 앉아있다가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렇지! 나는 하루종일 머물다 가는 공간, 자꾸 생각나서 또 오고 싶은 공간, 어떤 존재도 배제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야."
홍님은 단념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손님이 많이 오면 좋겠지, 그런데 내가 원하는 공간은 그게 다는 아니야. 너의 작업실로 말할 것 같으면 문학작가, 그림책 작가, 번역가, 심지어 공무원, 결혼할 커플까지 배출한 곳이라는 말이지. 나는 그런 가능성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회전도 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책방을 시작하고 내가 집안 경제를 담당하는 홍님에게 준 돈은 지난달 60만원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인 ISFJ 홍님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라며 한결같이 나를 응원한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해 온 나를 위한 그의 끝없는 배려임을 안다.
희망리에 가기 전에 꿈이 하나 더 생겼어요. 밤가시마을에 언젠가 지금보다 큰 작업실을 여는 꿈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 처럼 작업실에는 아직 깨어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글에는 '있다' 라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꿈으로 그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마음껏 상상해 보려고 합니다. 가능성이 넘치도록 있는 작업인들을 늘 응원하고 싸랑합니다.
희망리에 관한 글은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https://brunch.co.kr/@03mumyeong/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