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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 정 Feb 01. 2024

설국, 탐라체험기

한라 어승생악 +윗세오름 눈꽃 체험산행,  24. 1. 27-8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부분       





눈은 설레임이다. 

현실에선 '눈부신' 고립이란 게 있을까만은 시인의 상상력 덕분에 심박이 빨라진다.  


대신 한계령이 아니라 한라다. 


"1월 말이면 한라산 설경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Y 대장의 말에 따라 지난 연말 제주행 왕복 항공권을 예매했다. 


여행일이 다가오자, 거짓말처럼 천안과 제주만 콕 집어 폭설이 쏟아졌다. 

덕분에 한라산 등반은 전면 통제 상태. 

새벽 5시 20분 간절한 맘으로 천안 출발, 청주공항을 통해 8시를 조금 넘겨 제주에 닿았다.  


백록담은 여전히 통제였지만 영실 쪽 루트는 뚫렸단다.  

Y대장의 뇌세포들이 바빠졌다.  


"일단 어리목 쪽으로 가 봅시다. 지금이 기회일 듯요!"


원래는 첫날 숲길 트레킹으로 몸을 풀고 다음날 윗세를 오르는 일정이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어리목탐방지원센터 주변 도로는 역대급 눈폭탄을 직관하러 몰려든 차량들로 이미 엉망이었다. 탐방센터 주차장 입구는 만차 표시와 함께 통제 상태.


Y 대장의 '거침없고 현란한?' 말솜씨(일급비밀) 덕분에 우리 승합차는 어리목주차장에 안전하게 주차를 완료.

바로 해발 1,169m 어승생악을 올랐다. 


폭설 직후 한라는 바람도 강추위도 없이 포근히 우릴 품어주었다. 

어승생악 정상에 올라 바라본 눈 덮인 윗새는 환상 그 자체였다. 



백문이 불여일견, '유구무언' 산행


말로 표현되지 않는 장면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풍광들...   




내로라하는 벚꽃 길들이 울고 갈 것만 같은 천백고지 눈꽃길


이튿날은 해발 1,700m 윗세오름이다. 새벽 6시에 기상하여 부지런을 떨었다. 어승생악보다 700m가 높으니 쌓인 눈의 부피감/무게감부터 다르다. 정상 부근에선 눈보라가 몰아쳐 극지 체험을 방불케 한다. 개인적으론 딱 4년 전 오늘, 다녀온 안나푸르나의 설경보다 더 '히말라야' 스럽다. 



절대 황홀! 이런 풍광을 이 나이가 되고서야 처음 접했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다.  

9박 10일로 다녀온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비교하면 가성비면에서 겨울 한라가 완승이다. 



+ 귤농장 체험 with 쫄깃한 벵에돔 한점


승합차를 운전하는 Y대장의 눈빛이 분주하다. 

서귀포 근처 감귤밭을 빠르게 searching 중...

갑자기 차를 대더니 주인양반과 대화, 모두 내리란다. 


"끝물이긴 하지만 나무에서 직접 딴 귤 맛이 최고예요"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 한 통에 만원, 모두 전투적으로 귤을 땄다. 


따온 귤을 상자에 담는데, 주인장이 주방에서 직접 잡아 보관한 벵에돔 한 마리를 바로 회를 쳐 김밥과 함께 맛보란다. 김밥 위에 회 한점 + 와사비 올리고 입에 넣으니 바다냄새와 감동이 솟구친다.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외지인에 이런 친절이라니, 한 세대 전도 아닌 2024년에.


친구 L, 올해 환갑 맞은 아재의 해맑은? 표정


+ 제주동백수목원


첫날 어승생악의 환상적인 눈꽃을 보고 천백도로를 넘어 제주동백수목원을 찾았다. 흐리던 하늘이 순수 코발트 빛으로 바뀌었다. 초록 나뭇잎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설국에서 천상의 화원으로 순간 이동, 건강에 좋다는 냉탕온탕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한 그루
이처럼 아름다운 낙화라니


설국에서 동백수목원 가는 길에 만난 하늘, 같은 섬 맞나?


+ 드라이빙 제주 바다


이틀간 제주 곳곳을 누볐다. 잠깐씩 들른 제주 바다의 멋진 풍광, 잠시 바람 좀 쐬시라. 

산방산 우측 너머 운해 속 아득한 백록담
차귀도의 일몰
협재해수욕장 너머 뭉게구름


형제해안로서 바라본 형제바위


+ 구름 위 일출과 백록담


제주행 비행기에 오를 때 Y대장이 내 좌석을 확인하더니, 이륙 후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란다. 설마 했는데 구름 위로 솟구친 비행기 창 너머로 잘 익은 홍시감이 둥실 떠오른다.   


청주-제주행 비행기는 좌측 창가 쪽이 일출좌석이다

배운 건 써먹어야지. 돌아오는 비행기 표의 사전 체크인 때, 부러 창가 쪽을 택했다. 

이륙 후 뒤를 창 밖을 보니 드러눕고 싶은 운해 위로 늠름한 백록담이 배웅을 해 준다. 


시작부터 끝까지 맛난 과자들로 가득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여행이었다. 

제주-청주행은 우측 창가 쪽이 백록담 좌석!

+ 탐라의 먹거리들


여행의 절반은 먹방

탐라의 수많은 식당들을 다 꿰고 있는 듯한  Y대장의 최종 선택지들을 소개한다.   


유리네식당- 성게미역국, 갈칫국, 돔베고기, 그리고 자리무침 : 어승생악 오르기 전 아침으론 과하게 먹은 듯, 전복성게미역국은 딱 기대하던 맛이었고, 처음 맛본 갈칫국의 우윳빛 국물맛이 신선했음. 


김만복 김밥집- 네모김밥과 해물라면 : 전복내장으로 버무린 사각김밥이 유니크했으나 가격이 사악했음


물고기zip- 긴 꼬리 벵에돔과 병어회 : 요긴 완전 비추!, Y대장이 눈탱이 맞은 집,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산지해장국- 내장탕, 선지해장국 : 건더기가 그득한 내장탕은 소주 없이 아침으로 먹긴 다소 과한 듯


산방산 초가집- 전복해물전골과 전복구이 : 전골 속 내용물이 풍부하고 우러난 국물로 끓인 칼국수도 굿~


김재훈 고사리육개장- 고사리육개장과 몸국 : 지금까지 경험했던 육개장과 180도 다른, 반 그릇쯤 비우면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 결국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게 됨~



딱 기대했던 그 맛, 성게미역국
전복내장으로 맛을 낸 사각김밥과 가성비 별로인 오징어무침


개인적으론 최고점을 주고픈 전복해물전골
소주를 부르는 비주얼의 내장탕
육개장스럽지 않은 비주얼의 고사리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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