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진화하다
이혼은 어렵다. 이혼은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처음에 어렵던 이혼 후의 삶도 시간이 지나 버릴 것은 버리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으면 나름의 장점이 있고 의외의 성장도 있다.
일단 이혼을 결정 및 실행하기 까지 한집에 사는 동안 오랫동안 느꼈던 집안의 그 싸한 분위기. 그 싸한 공기를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좋다. 지속되어 온 두 어른의 감정적 대립으로 집에 있어도 집에 있는 것 같지 않은,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심정으로 오랫동안 온전히 몸과 마음을 쉴 수가 없었다. 내 공간에서 내가 맘 편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었나 싶다.
공간에 대한 컨트롤과 더불어 시간 및 선택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물론 이혼 후에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뭔가를 새로 해야 하는 시간이 추가로 늘어날 수는 있지만 두 사람이 안 맞는 성향으로 결정하느라 늘 뭔가를 꾹꾹 누르고 응어리진 채로 살았던 것에 대한 컨트롤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특히 명절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물론 원가족과 명절을 보내긴 하지만, 내 노동력과 시간을 마치 저당이라도 잡은 듯 강제노동 같은 명절 노동과 감정적 노동에서 자유로워졌다.
조금 더 좋게 발전한 부분은 생각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내 이혼한 상황과 사정을 남에게 다 알릴 필요도 이로 남을 설득할 필요도 없는 것과 같이 남들에게도 그런 사생활의 영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놀라는 일이 생겨도, 의아한 부분이 있어도 다 사정이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내 생각이 맞으니 다르게 생각하는 상대를 설득하여 고쳐보겠다는 오만함도, 왜 저렇까 난데없는 호기심을 발휘하는 일도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내 일이 아니라면, 내 영역이 아니라면 상대의 일, 영역, 감정은 상대에게 고스란히 주도권을 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에 사회통념(?) 상으로 생각하던 많은 고정관념에도 새로운 공간을 넣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 무심결에 "남편 또는 와이프는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고 (왜냐면 모든 아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혼이라는 인생의 선택을 했고 그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이 꼭 결혼/이혼과 같은 토픽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소신으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존중하게 되었다. 그것이 종종 나의 신념과 같지 않더라도 그들 나름으로는 그 선택을 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 것이며 그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느라 분투중일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수와 다르다고 왜 다르냐고, 다수에 속하라고 할 권리도, 소수에 속한 그들만의 선택도 그걸 굳이 남에게 입증해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동거를 하든(결혼을 한 번하든, n 번하든, 안 하든) 남자를 사랑하든, 여자를 사랑하든 머리가 길든 짧은,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그 어떤 이유와 상관없이 그 각각의 다름과 존엄을 존중하며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그냥 곁에 두고 보게 되었다. 다들 애쓴다 그 나름대로 살아가느라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은 의외의(?)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혜석이 살던 시절에는 이혼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물었고(이건 개인 하나의 문제가 아닌 가족과 사회의 이슈였지만) 이제는 이혼도 그럭저럭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봤을 때 지금 내가 또는 많은 이들이 드물고, 참 별일이 다 있네라고 생각하는 토픽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나가면 그러려니.. 하게 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퍽이나 이상하다고 느끼는 일에 대해서도 '나혜석'과 '나의 이혼'을 떠올리게 되었다. 같은 토픽도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니 나혜석이 너무나 시대를 앞서 나간 여성이었던 것처럼 지금 이상하거나 기괴하게 느껴지는 어떠한 토픽도 훗날에 이해되는 때도 있을지 모르리라는 생각을....
어쩜 이혼이라는 것을 많이 하게 되는 나이가 40대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40대에는 많은 삶의 이슈가 새로 생기는데, 몸과 마음의 힘이 슬슬 떨어지게 시작되는 나이이다. 요령을 몰라 이전에는 무식하게 그저 맞서 싸우던 삶의 이슈들이 무리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조금은 현명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혼을 하면서 이미 많은 에너지와 체력을 쓰고 나서 고갈된 상태이기에 더 이상 그런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혼을 해서 그렇게 된 건지,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된 건지 정확히 갈음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현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못돼 먹은 청소년처럼 투정할 대상도, 밥 차려줄 사람도 그 무엇도 없이 스스로가 나이자 배우자이자 부모이자 모든 역할을 하게 되다 보니 그렇게 진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장점을 위해, 이렇게 진화(?) 하기 위해 굳이 이혼이라는 것을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혼을 하고 나니 이렇게 되어 있는 나를 본다. 나름의 장점이라면 장점, 성장 또는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