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기는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상실
어제 친구를 만났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3년 정도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직 20대일 때)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동료였고 당시에는 친하지 않았다. 같은 성별,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다른 성격에 우리는 그저 동료였을 뿐 친하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한 마디로 비호감.
그러나 살면서 비슷한 키워드를 갖게 되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고, Relocation을 하여 다른 나라에 살고 일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혼'경험이라는 공통키워드를 갖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아이가 태어날 무렵부터 별거/이혼으로 거의 아이를 혼자 키웠다. 그것도 여러 나라로 relocation을 하며, 나는 아이를 못 데려와서 혼자 살았다. 그게 다른 점일 뿐이다. 둘 다 사회적으로는 밥값 하는 위치가 되었으나, 그에 못지않은 삶의 스트레스, '공황'이라는 키워드도 비슷하다. 친구의 아이는 이미 틴에이저가 되어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친구는 15년 가까운 시간을 엄마로서 다시 싱글의 삶을 살았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단계에 주어진 미션들을 열심히, 철저하고 치열하게 달성 (초과달성, 무지 초과달성)하며 살아왔고 사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한없이 지치고 여린 사람들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한 엑스트라의 노력까지 기울이며 살아간다.
혼자 살면서 여러 번의 걸친 이사를 혼자 하며, 이후 승진을 하거나 사회적 성취를 거두었을 때 내게 그래도 혼자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더 많은 책임이 따랐다. 더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더 많은 챌린지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독해져야 했지만, 홀로 내 오피스에 앉아 있을 때에는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사회적 성공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싶다 위로하다가 이런 것들이 더욱더 나를 외롭게 만드는구나 싶은 모멘트의 그 고독감.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혼을 하고 또 혼삶을 살며, 매일 악몽을 꾸며 식은땀을 흘리며 깨던 밤은 이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상처는 오래간다.
그걸 보듬고 살아가는 것도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