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연을 위해 한복 치마 수선이 필요했다. 기존에 안입는 한복치마를 허리치마로 수선하기 위해 전문점을 몇 곳을 돌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한복 천이 다루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생각은 했지만, 너무나 단칼에 거절당하니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 들린 몇몇 곳은 '한복'이라고 말하자마자 자세한 내용은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네는 안한다면서 이쪽 라인에 있는 가게들은 다 안하니까 한복점이 많은 반대편 시장 골목으로 가보라고 했다. '가능한지 아닌지 한 번 봐주기나 하지' 서운한 마음을 느끼면서 반대편 시장골목으로 넘어갔다. 여기도 마찬가지. 첫번째는 '한복'이라서 거절. 두번째는 샘플과 수선이 필요한 한복을 같이 보더니 여분의 천이 없으면 수선이 안 된다고 또 거절.
시장 안 점포를 열 군데 가까이 전전한 뒤, 드디어 가능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곳 역시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같이 가져와야 허리끈을 만들 수 있다고 앞서 들렀던 수선집과 똑같이 말했다. 하지만 내가 치마만 따로 구한거라고 이야기를 하자 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러면 키와 허리둘레를 재서 끈 없이 딱 맞게 여밀 수 있도록 처리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수선비가 평소같으면 좀 비싸다고 생각할 법 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사실 후크를 다는 것처럼 여미는 방법을 다르게 생각하고 제시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인데 그 많은 전문점을 돌아다녔지만 하나같이 NO라고만 말했지 내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제시해 주려고 했던 곳은 없었다. '수선'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기술직이지만 '기술'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회사가 이전을 하면서 퇴사를 했다. 프리랜서로 전향할 것인지, 다른 회사에 이직을 알아볼것인지와 더불어 취직을 한 후에 미뤄두었던 '뭐해 먹고 살지'라는 물음까지 모두 고민하고 있었다. 이 날 우리는 거의 10시간 가까이 같이 있었다. 3D프린터가 어떻고, AI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친구가 말했다. 사실 디자인이라는 작업도 대부분 미래에는 기계로 하지 않겠냐. 일정한 틀만 만들어지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걸 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이날 친구에게도 오늘 했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기술'이 다가 아니라고. 기계는 '가장 빠른 방법, 저렴한 방법, 효율적인 방법'을 우선순위에 두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더 가치있고 더 재미있는 걸 찾고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내가 가진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그걸 구체화 하는 능력. 성공확률이 반도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를 부려서 그걸 해내는 주관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 바로 강점이라고. 나는 평소에 그렇게 내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타입이 아니다. 하지만 친구에게 힘내라고 급하게 꾸며낸 말이 아니라 오랫동안 하고있던 생각이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대화 주제를 옮겨가다보니 자정이 넘어서까지 있었는데 친구가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자신은 스스로 좀 자신없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 겉으로 말할때는 반대로 강하게 밀고나가려는 그런 게 있는데, 아까 말했던 고민에 대해서 내가 확신을 가지고 '그건 아니다'라고 말해줘서 좋았다고. 어떤 고민거리나 생각을 말했을 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지 않고 열심히 생각해서 너의 말로 답을 해주는게 좋다고.
#3. 비즈니스에서도 기술적인 부분에서 업체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결국 여기서 선택을 좌우하는 건 '사람다움'이 아닐까 또 한번 생각했다.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관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 을 꼽고 싶다. 표현도 그렇다. 생각을 글로, 말로 풀어내는 건 끊임없는 선택을 거친다. 글로, 말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남의 말'이 아닌 '나의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