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케혀 Dec 16. 2021

부디 거기서 잘 지내기를

중고마켓에 신지 않는 신발을 내놓으려다가 신발 포장 상자에 담겨있는 편지를 우연하게 보게 되었다. 이사를 오면서 상당수의 편지를 버렸었는데 그중에서도 최근 것들이 몇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카톡 그리고 sns가 주류를 이루는 지금 편지를 언제 받아 보았는지 그리고 언제 마지막으로 써보았는지 아득하기만 했다. 편지는 앞의 것들과 다른 여운을 남긴다. 연필이나 볼펜으로 직접 물리적 힘을 가해서 썼다는 것과 그 물리적 힘이 새겨진 종이가 남아서 그런지 조금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좋은 것처럼.


한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 자신에게는 가닿지 못하는 시적인 문구를 보면서 ‘이 친구가 이렇게 시적이었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예전보다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횟수가 현저하게 늘어나서 조금 낫지만 이 친구의 이런 시적인 표현은 그 나이의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편지에는 20대 젊은 시절 다시 시작되는 관계에 대한 불안이 뭍어나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알게 모르게 때로는 대놓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았던 것 같다. 쉽게 관계를 형성하고 쉽게 도망친 것이다. 아주 못되게. 나의 부박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젊다는 이유로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을 했던 것이다. 어떤 말로도 그 상처를 치유할 순 없겠지만 그가 부디 잘 살아가기를 힘든 일이 닥쳐도 지혜롭게 이겨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것밖에 할 수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