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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Sep 18. 2022

빛이 그곳에 있으라 하시니

시험관, 대망의 이식


밤 동안 별안간 많은 꿈을 꾸었다. 남편도 그랬는지 옆에서 "으아악!!" 하고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악몽 꿨어?" 물었더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푹 잔 덕분인지 컨디션이 좋았다.


오늘은 드디어 이식 날이다.


코로나 걸린 이후 생리를 2개월 넘게 하지 않아서 생리 유도 주사를 맞았고, 그러고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생리를 했다. 찾아보니 난자 채취 후에 호르몬 불균형이 와서 두 번째 생리(첫 번째는 난자 채취 후 일주일 안으로)를 50일 넘게 안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간절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반대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은 그 생각들에서 벗어나 편안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생리를 시작하자마자 반가운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드디어 생리해요!"


사실 난임 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제일 적응이 안 된 부분이 '생리'라는 단어가 아주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거였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환자분 생리 언제 하셨어요?"

"생리 2~5일 차에 방문해주세요"

"피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연락 주세요"


그동안 생리는 그런 것이었다. 여성의 몸에서만 일어나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것, 남들 앞에서 얘기하기 꺼려지는 것. 심지어 여자들끼리도 저 단어를 말할 때는 목소리를 낮추곤 했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었다. 진료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제일 많이 들었다. 다른 문장 속에서 저 단어를 말할 때 특별하게 음성을 낮추지 않았다. 나는 그런 환경이 반갑고 좋았다. 생리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만 아니라,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주요한 신호이기도 하다.


병원을 방문하고 배란 유도 약을 처방받았다. 배란이 되는 걸 확인하고 5일 뒤에 이식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약에 대한 반응이 느려서, 예상한 시기에 배란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배란이 되고도 충분히 남을 시기예요"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네라고 생각했다. 결국 난포가 터지게 하는 엉덩이 주사를 맞고 귀가, 그때부터 이식일 까지 프로게스테론 성분의 질정을 넣어주어야 했다. 자연임신의 경우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호르몬이 분비가 되지만 시험관의 경우는 질정 혹은 주사를 통해 인위적으로 자궁벽을 두껍게 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대망의 이식 날


숱하게 앉아본 굴욕 의자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발가벗겨진 내 아래 부위가 시술대에 놓였다. 선생님이 오셔서 배아 상태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술에 들어가기 위해질 입구를 열어 기구로 고정을 시켰다. 복부 초음파를 통해 수술 과정을 시술대 옆 모니터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래쪽이 살짝 뻐근하고 가끔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지만 모니터 속 광경이 신기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기다란 바늘 끝에 작게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그 빛이 자궁 속 어딘가에 콕하고 박혔다. 이 모습은 다소 종교적인 느낌마저 들었는데 마치 의사 선생님이 신이고, 신의 손으로 빛을 가닿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기독교가 아닌데 이 구절이 떠 올랐다.


그곳에 빛이 있으라




"000님 끝났습니다, 꼭 성공해서 만나요"


선생님이 따뜻하고 강하게 말씀해 주셨다. 문득 난임 병원 의사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할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이런 시술을 할 텐데. 다른 환자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의사 선생님의 손에 운명을 걸 텐데. 그 무거운 책임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수술이 끝나고 바퀴 달린 침대로 옮겨 누웠다. 20분 간 가만히 누워 회복 시간을 가지는 동안 다소 고양된 느낌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의 나보다 더 소중한 내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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