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이야기
이 글은 영화 <벌새>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벌새>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있지만 특히 은희의 형제자매 관계를 보면 먹먹해진다. 오빠는 매일 여동생을 때리고 욕한다. 얼마나 아픈지는 안중에 없다. 그저 폭력으로 자신보다 어리고 작은 동생을 누른다. 언니는 은희가 귀에 붕대를 감고 있을 때 "왜 그래?"라고 물어는 보지만 거기까지다. 그도 아버지의 눈을 피해 남자 친구와 몰래 창문을 넘어 다녀야 하는 처지라 동생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듯하다. 서로 의지를 한다던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후반부에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은희는 울면서 공중전화로 뛰어간다. 다리가 끊어지면서 언니가 매일 타고 다니는 통학 버스가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얼굴만 아는 지인이라도 재난 사고의 피해자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큰 충격이겠지만, '친언니'이기 때문에 더욱 절박하게 표현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아빠 언니한테 전화해봐 빨리 ! 언니한테 전화해봐!"
라고 발을 동동거리며 우는 은희를 보면서 (물론 친언니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 같지만)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형제자매는 이만큼 서로를 잘 모르다가도 이토록 가까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세상에는 다양한 양상의 형제자매 관계가 있겠지만, 나는 남동생과 특별하게 끈끈하지도 그렇다고 사이가 아주 나쁘지도 않다. 연년생인 동생과 나는 유치원 때까지 체구가 비슷하게 자라서 엄마는 똑같은 옷을 자주 사주셨었다. 동그란 얼굴에 작게 찢어진 눈이 똑 닮아 같은 옷을 입으면 마치 쌍둥이 같았다.
엄마가 사주신 아이보리색 멜빵바지를 둘이 똑같이 입고 찍은 어릴 적 사진이 있다. 빠진 앞니를 활짝 드러내고 짓궂게 웃고 있는 남자아이와 그 옆에서 입을 꾹 다물고 차렷 자세로 서 있는 내성적인 여자 아이. 똑 닮은 얼굴과 달리 우리는 성향이 정반대였다.
사실 <벌새> 속 은희와는 상황이 다른 게 우리는 그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단연 최대의 적은 남동생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있는 힘껏 던졌다. 상처 내면 부모님께 혼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그랬다. 한 번은 쓰레기통 뚜껑을 휙 던진 적이 있는데 동생 얼굴에 맞아버린 게 아닌가. 맞은 이마를 부여잡은 동생은 울면서 전속력으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 또한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살면서 누구를 때리고 욕한 건 동생밖에 없었고, 덕분에 나는 내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세상은 당하고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 놀 때는 짝이 참 잘 맞았다. 나란히 앉아 천사소녀 네티와 세일러문, 우주 용사 선가드를 보았고, 역할극에는 인형과 로봇이 늘 함께 했다. 컴퓨터 게임도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 게더 재밌었다. 엄마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함께 게임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다가도 좋아했고 상냥한 말을 해본 적이 없지만 잘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크면서 서로 다르던 성향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나는 늘 한 명의 친구를 단짝으로 두었던 반면 동생은 항상 무리 속에 있었다. 그 아이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부러웠다. 남한테 부탁하기 싫어하고 무슨 일이든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나였다. 동생을 지켜보면서 성취에도 일종의 다른 방식이 있음을 알았다
남편과 만나고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외동인 사람이 형제자매와 함께 자란 사람과 어떻게 다른지 캐치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남편은 맛있는 음식을 늘 아껴두었다가 맨 마지막에 먹었다. 나는 해맑게 남편이 킵해둔 것들을 집어먹곤 했는데 뒤늦게야 진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맛있는 음식이란 재빨리 먹어치우지 않으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런 거였다. 음식 앞에서 생존본능을 드러내는 나와 달리 남편은 스스로가 주인이므로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느긋했다.
나는 종종 남편이나 시댁에 대한 불만을 동생에게 털어놓는다.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건 내 얼굴에 침 뱉기고, 부모님은 속상해하시니까. 동생은 적당히 멀찍이서 그러나 진심으로 내 고민을 들어주는 유일한 존재다. 남편도 분명 나에게 불만을 느끼지만 직접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텐데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게 가끔은 안쓰럽다.
자매, 형제의 정이란 참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쌓이는 모양이다. 싫어하면서도 껴안고, 껴안으면 웃음이 나고, 그렇다고 다 풀리는 건 아니고, 그래서 늘 할 말이 남아 있는 사이. 어린이에게 자매, 형제는 부모라는 절대적인 조건을, 지붕을 공유하는 동지다.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 만나 평생을 알고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다. 각자 서투른 채로, 서로의 사회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바로 자매, 형제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출생률이 가임여성 한 명당 0.8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건 다른 의미로 형제자매와 함께 크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이기도 하다. 나 또한 어렵게 임신 준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두 명을 낳아 키운다는 게 사치가 아닐까도 생각한다. 물론 사회에서 만난 많은 외동들이 '이기적'이라는 편견과 달리 배려심이 정말 깊었다. 마찬가지로 형제가 있는 경우 첫째는 책임감이 강하고, 둘째는 성격이 좋고, 막내는 응석받이라는 강한 고정관념들도 자주 들어맞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면서 가족 내 나이 서열, 위계에 따른 성향이 점점 흐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는 외동으로 자라날 수많은 아이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추석에는 겨울에 입을 수 있는 노르딕 문양의 두터운 카디건을 두 벌 샀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배우자로 인해, 누나로 인해 새로운 형제를 갖게 두 사람에게 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