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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Sep 12. 2022

우리가 그때 헤어졌다면

예비부부 상담 후기

예나 지금이나 결혼이라는 제도는 자본,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개입을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영화처럼 오로지 남녀의 순수한 사랑만으로 성사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랬다면 수많은 커플들이 상견례 장소를 박차고 나와 서로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거나, 청첩장을 돌리고 나서도 너랑은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며 파혼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우리 커플에게도 결혼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에 대하여 예비 시댁으로부터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듣는 것이 싫었다. 상견례장에서 마냥 기분 좋게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버린 우리 부모님도 미웠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삐그덕거리는 이 결혼은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일주일간 시간을 갖기로 했고, 남편과 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가슴이 아팠다. 그에 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괴로웠다. 일주일이 어떻게든 지나간 뒤에도 감정이 아무렇지 않다면 헤어지자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회사 일이 바빠서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게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퇴근하는 버스 안, 우리 집으로부터 몇 키로 떨어진 편의점 앞에서 남편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성이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래도 생각을 정리하고 할 말들을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아직 무엇도 백프로 확신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생각했다.


우리는 헤어질 수 없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침착했고, 그도 울지 않았다. 함께 집에 들어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선택과 신뢰,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라면서 꽤 많은 장애물을 통과하지만, 가족이 그 대상이 될 때에는 나아갈 도리가 없다. 전의를 품을 수 없어 주저앉고 싶어 진다. 우리는 재결합을 결심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방법을 몰랐다. 씩씩할 수 있는 방법,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생각해 낸 것 중 하나가 상담이었다. 이미 결혼한 친구가 부부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같은 클리닉에서 예비부부 상담도 해준다고 했다.


예약일 날 손을 잡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 보던 전형적인 이미지 그대로 하얀 가운에 안경,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온화한 얼굴의 선생님이 계셨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시고는 처음에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물으셨다. 종이 위에 이름, 나이, 직업, 연애기간 등등을 기록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갈등 파악에 들어갔다. 무엇 때문에 오셨나요 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하여 술술 말했다.


 - "남자친구의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요. 그분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요."  


그러자 선생님이 물으셨다.


 - "혹시 집을 구할 때, 양쪽에서 각각 얼마씩 도와주셨나요?"


처음에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당황했다. 굳이 액수를 밝혀야 하나? 마음의 치유가 이루어지는 신성한 장소에서 돈 얘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건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다. 선생님은 왜 이걸 궁금해하실까.


 - "결혼에서 돈 문제는 아주 중요해요. 양가에서 누가 더 많이 지원해줬느냐에 따라 우위가 결정되는 일종의 파워게임이에요."


파워게임이라. 생각해보니 그랬다. 5년을 사귀면서 단 한 번도 우리 사이에 터치가 없으시던 남편 부모님이었다. 어머님이 나에게 전화해서 부모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치신 것은 엄밀히 말해 금전적 지원이 오간 뒤었다.


 - "이렇게 된 이상 선택해야 해요. 착한 며느리로 살면서 계속 괴로울 것이냐, 아니면 그분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살 것이냐."


중요한 건 그분들의 생각이 아니라 나였다. 정작 바뀌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으니 결국은 내가 나를 바꿔야 했다.


 - "00 씨가 괴로운 건, 잘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에요. 그 마음에서 벗어나면 그분들이 뭐라고 하든지 전혀 상관이 없어져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는 거예요"


또 의외였던 건 남편이었다. 그때까지 우리 둘 관계의 키는 내가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일 힘든 사람은 나니까. 그리고 그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괴로움을 계속 어필했다. 그걸 받아들이는 남편이 어떤 마음일지는 안중에 없었다. 힘들어봤자 나보다 힘들겠어라는 생각.


그런데 선생님이 짚어주었다. 이 상황에 제일 괴로운 건 남편이라고. 사랑하는 부모와, 그 부모를 미워하는 여자 친구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


00 씨는 이 사람을 닦달할 게 아니라 본인이 착한 사람이 되겠다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해요



그 말은 통찰력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줄곧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늘 착하고 좋은 아이로 비쳐야 했다.  


착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은 당장의 결혼을 위한 솔루션이면서 동시에 내 인생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인생이 아니라, 누가 뭐라든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사는 것. 그 마음가짐으로 결혼생활에 들어간다면 외부에서 어떤 압박이나 간섭이 들어와도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어려운 숙제를 받았지만 상담실 문을 나오는 마음은 가벼웠다. 끝나고 샤이바나에서 먹은 치즈가 듬뿍 들어간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오래간만에 웃으면서 데이트를 했다.


일러스트 by 쮸댕

결혼한 지 2년째가 되어가는 지금도 그 과제는 여전히 수행 중이다. 시어머니 전화 한 통에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연락 안 했다 싶으면 내가 먼저 찾아뵙자고 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하기를 선택한 건 후회가 없다.


정말이지 잘한 결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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