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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Sep 11. 2022

활 쏘는 엄마

엄마의 일탈을 응원한다

최근에 엄마가 활쏘기를 시작했다. 37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3년째 백수생활을 누리던 엄마가 친구 따라 우연히 시작한 새로운 취미이다. 매일같이 국궁장으로 출근해서 해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오는 모습을 보면 취미라고 하기엔 꽤 진지하다.


한 번은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혼자 고기를 구우며 식사하고 계셨다.


- "아빠 왜 혼자 드세요?"

- "엄마 활쏘러 갔어, 그래서 아빠 혼자 고기 굽고 있어. 너희 엄마 신났다"


어딘지 불만 섞인 목소리다.


- "아빠, 엄마가 재밌게 노는 게 싫어요? 어차피 아빠 엄마랑 놀아주지도 않잖아요"

- "그건 그렇지... 근데 그냥 이상하게 질투가 나네"


금슬 좋은 부부도 아니고, 입만 열면 서로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이다. 아빠가 질투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웃겼다. 한편으로 엄마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 밥은 꼭 챙기는데 하고 갸우뚱했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엄마 그렇게 재밌어? 아주 신나셨네"

 - "그게 아니고... 오늘 대회날이라"


내 말투에 빈정거림이 묻어있었다. 전화기 너머로부터 엄마가 그 현장에 흠뻑 빠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집 생각을 잊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란, 순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가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깔려 있었다.



 아버지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 우리는 그게 아버지가 응당 해야 할 몫이라며 용인한다. 어머니가 세계에 나아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때는 어머니가 우리를 버렸다고 느낀다. 이리도 모순되고 사회의 가장 강력한 독기를 머금은 잉크로 쓴 메시지를 어머니가 용케 견뎌 내는 게 가히 기적이다. 그러니 이성을 잃지 않을 수가 있나. -<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국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를 무안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끊자마자 곧바로 후회했다.


나는 분명 작은아씨들에서 조를 제일 좋아하고, 리베카 솔닛과 데버라 리비의 글을 찾아 읽은 사람인데. 어째서 정작 제일 가까운 여성인 엄마의 일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엄마는 가끔 그런 말을 했다. 40대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동생과 나를 키우느라 너무 정신없이 보낸 나머지 그 시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정말 슬픈 것은, 나 또한 40대의 엄마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때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학업과 친구들, 혹은 학원에서 만난 잘생긴 이성에  호기심이  때였다. 관심이 오로지 가족 외의 것들에 쏠려 있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지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따로 시간을 내어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본인을 위해 한 일은 빨간색 트렌치코트를 사는 일 같은 거였다.


40대의 엄마를 챙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일러스트 by 쮸댕


그런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일탈은 응원하고 지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서 벗어나 오롯이 본인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동안 해온 적 없던 그런 것이었다. 그에게 더 이상 챙겨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일종의 자유였다.


비로소 혼자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 온 거다.


그런 선물을 자식들조차 주지 않는다면, 딸인 나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하다.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고, 웃고 떠들면서 맛있는 것을 나눠 먹을 친구들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내가 크로스핏이나 러닝 등의 취미생활을 통해 에너지를 얻은 것처럼. 가족이 아닌 다른 사회 속에서 또 다른 자아가 되었을 때 생기는 자존감이 분명히 있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고, 엄마가 지금 그 역할 놀이를 하고 있음을 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잘못한 사람처럼 변명을 한다. 그 죄책감은 뚜렷한 원인이 없는 감정이다. 그는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더 자주 묻고 말해주어야 한다.  


오늘은 활 몇 발 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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