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4주 차
4주 6일,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아침부터 속이 메스꺼운 게 컨디션이 평소 같지 않았다.
며칠 전 병원에서 피검으로 혈액 내 hcg호르몬 수치를 검사했고, 다행히 1차에 711, 2차에 4269로 안정적인 수치 결과가 나왔다. hcg호르몬은 인간 융모막 성선 자극 호르몬으로 임신 중에만 만들어지는 특징이 있다. 이 호르몬이 이틀 간격으로 더블링이 되어야 정상적인 임신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1차에 수치가 꽤 높게 나와서 선생님은 착상이 정말 잘 되었거나 낮은 확률로 쌍둥 이일수도 있다고 하셨었다.
임신 초기 우리를 괴롭게 하는 입덧도 이 호르몬이 원인이다. 이렇게 빨리 입덧이 온다고? 의아했지만 심리적 원인인지 호르몬 탓인지 메스꺼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가 만들어줄 음식과 오랜만의 만남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초대받은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쭉 친하게 지내왔다. 한 명은 작년에 출산을 해서 아직 돌이 안된 아기가 있고, 또 한 명은 만삭의 임신부로 두 달 뒤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집주인인 나머지 한 명은 그 누구보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바쁘게 사느라 아직은 이런 것들이 먼 미래에 계획되어 있다. 어느 한 시절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지나온 우리지만 어느덧 인생의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렇지만 어쨌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친구가 우리 중 첫 번째로 출산을 하고 병원에서 신생아 사진을 보여줬을 때 그 친구가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간 것 같았다. 그 세계에는 스스로의 존재만큼 소중한 또 다른 작은 생명이 있었다. 그 세계에서 친구는 전에 없던 커다란 책임감이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기와 생활하게 되면서 행복을 캐치하는 나의 뜰채가 더 커졌음을 느낀다. 잠자는 아기의 뜨끈한 정수리와 땀 냄새, 양 볼에 눌려 벌어진 부리처럼 뾰족한 입, 동그란 뺨의 곡선, 발바닥에 조르르 달라붙은 완두콩 오 형제를 손가락으로 조심히 쓸어보는 감촉은 어떻고, 아기가 없던 예전과는 종류가 다른,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문명적 행복 대 원시적 행복. -<거의 정반대의 행복>, 난다-
나 한 가지 전할 소식이 있어
아직은 이른 감이 있었지만 지난번 유산을 했을 때도 누구보다 많이 걱정해준 친구들이었다. 기쁜 소식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 역시 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불편한 건 없는지, 입덧은 어땠는지 물어봐주었고, 임신 초기가 가장 힘들었다며 지금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와인잔에 와인 대신 오렌지주스를 부었다. 스피커에서는 재즈풍의 <be my love>가 흘러나왔고, 카카오 가루가 듬뿍 올라간 삼단 티라미수가 접시 위에 놓여있었으며, 주황색 조명의 따뜻한 온기가 테이블을 감쌌다. 우리는 문득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겼다. 공부와 진로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때가 마치 엊그제 일인 것만 같았다.
고작 삼십 대의 나이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를 먹어도 아등바등하는 건 똑같다. 십 대 때는 공부에 아등바등했고, 이십 대 초반에는 취업과 성공에 아등바등, 그리고 이십 대 후반에는 연애와 결혼에 아등바등, 삼십 대 때는 또 새로운 과제 앞에서 아등바등한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그토록 집착했던 게 덜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험 결과가 지금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듯이. 물론 이 사실을 안다고 하여 무엇엔가 아등바등하기를 멈추진 않을 거다. 나는 앞으로 뱃속 생명에게 거의 정신이 나간 수준으로 집착할 것이다.
가끔 남편이 없는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남편이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남편이 사라진 이후의 슬픔을 나는 원하는 만큼 충분히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시호에 대해서는 언제나 도입부도 시작하지 못하고 화들짝 놀라 되돌아간다. 상상이 씨가 될까 재빨리 고개를 흔들어 떨쳐버리지만 가끔 멋대로 튀는 끔찍한 생각에 울기도 한다. 자식이 생긴다는 건 끝없는 걱정과 두려움의 저주 속에 갇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거의 정 반대의 행복>, 난다-
특별한 밤이었다. 불안감을 잠시 내려놓고 미래를 그려보았다. 잠시 동안 꿈같은 것도 품어보았다. 아이보리색 조끼와 밤색 플레어스커트의 교복을 입었던 그때 그 소녀들처럼. 이제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게 될 우리는 함께 팔짱을 끼고 밤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