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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Apr 11. 2016

머리 땋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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땋은 머리 해줘


  언니는 학교 갈 채비 다하고 이제 신발만 신으면 되는데, 둘째 녀석이 대뜸 한마디 합니다. 아빠는 머리 땋는 걸 잘 못한다고 지난번에 얘기했는데 말이죠. 오늘 처음은 아닙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땋은 머리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아빠가 기껏 해 보내는 것은 포니테일로 한번 딱 묶어 주는 것인데, 종종 낮잠 시간 마치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다시 해 주신 땋은 머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칭얼거리며 눕기까지 합니다. 안 되겠다. 큰 아이를 먼저 보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한번 해보자.


  아이 등을 바라보고 앉힌 후 다시 묻습니다. 다음에 하자. 싫어. 어금니를 꽉 깨뭅니다. 으르뜨. 

 

  아이패드를 꺼내어 유튜브로 조회해봅니다. 그래, 어찌어찌 보면서 따라 하면 되겠지. 외국의 어떤 아빠는 직접 머리 땋는 기술 UCC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유튜브 세상에 자료야 넘치겠지. 잔뜩 신이 난 둘째와 동영상을 찾아봅니다. 거의 다 고난도의 머리 모양 투성입니다. 그냥 기본적인 머리 땋기 하나 찾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네요. 


  이것도 찾아보고 저것도 꺼내보고, 일단 하나씩 조회해 보면서 머리를 붙들고 흉내 내어 봅니다. 

  실패. 

  다른 것 찾아보자. 

  실패. 

  잠깐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봐. 

  실패. 

  이렇게 하면 되나? 

  실패. 

  가만히 좀 있으라고! 알았다고! 

  실패. 

  머리가 짧아서 그런가 봐. 할머니는 했는데? 

  실패. 

  이게 머리야 짚신이야. 

  실패. 

  머리 흔들지 말라니까! 

  실패. 

  아야, 아파! 그럼 다음에 하자. 

  실패. 

  그냥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한테 해달라고 하면 안 돼? 싫어. 

  실패. 

  야! 왜! 

  실패.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고 머리를 확 잡아당깁니다. 머리 빗질도 몇 번인지 점점 거칠어집니다.  오늘은 이렇게 가고, 아빠가 공부해 두겠다 달래어 보기도 하지만 당최 들어먹질 않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꼼짝없이 둘이 앉아서 애꿎은 머리만 풀었다 묶었다 합니다. 오기도 생길 법 한데, 마음은 이미 포기했습니다. 결국은 1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지친 듯이 아이가 그냥 가겠다고 머리를 당깁니다. 아, 고맙다. 


  그렇게 전쟁 같은 시간을 한바탕 보내고 나서, 저녁에 집에 들어와 색시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정말 할 줄 몰라?” 하는 색시. 아니 내가 남의 머리 땋을 일이 뭐가 있나. 할 줄 아는 것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리고 다음 날 보란 듯이 색시는 아이에게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해 줍니다. 엄마 승.


  결혼하기 전에 작은 환상 같은 것이 있었는데, 제가 직접 집에서 살림하고 아내가 소득생활하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환상 속에는 딸내미 머리 땋는 것이나 아침 등교 채비로 지치는 모습은 없었지요. ‘육아’라는 짧은 단어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함하는지 새삼스럽게 깨닫는 오늘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언제 또 머리 땋아달라고 할지 모르는데 빨리 익혀 놔야겠습니다. 아빠한테 거는 기대가 없어졌으면 더 좋고요. 




머리 땋는 기계 없나.



사진 출처 : 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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