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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Jun 13. 2016

상품권

뜻하지 않은 선물에 마음이 무거운 날

  상품권을 받았다. 

  보험설계사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를 만났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차 한잔의 시간이 즐거웠다. 만날 때마다 함께 오래 일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 헤어지는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어색하게 안 주머니에서 급히 꺼내어 든 손이나 받는 손이나 멋쩍다.  손에 쥐어준 봉투에는 상품권이 들어 있을 줄 짐작했다. 선물 받을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맛난 것 사주라며 찔러 넣어준 것이다.

   안 그래도 돈 쓸 일 많을 테니 이런 짓 하지 말라고 거절했지만 굳이 주고 싶단다. 선물을, 마음을 주고 싶었을 터이다. 보통 줄 때는 성의 없어 보일까 조심스럽고, 받을 때는 값어치가 너무 또렷하게 적혀 있어 민망한 선물이 바로 상품권이다. 오늘은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전 회사에서는 매주 실적에 따라 시상을 했다. 꼭 1등만 주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항목으로 동기부여를 한다. 나 역시 이때 받은 상품권은 오롯이 나를 위해서 쓰곤 했다. 이것도 아마 그런 상품권이었으리라. 그래도 현찰보다는 덜 미안한 생각에 받아 넣었다. 조카들 사줄 선물 대신 급하게 준비했겠지. 오랜만에 만난 형에게 1,2만원 현찰을 쥐어 주긴 민망했을 테다. 아니, 1,2만원 현찰이 지갑이 없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아무 말 않고 받아두는 것이 그 친구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을까? 얼른 가방에 찔러 넣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가방을 열다가 방금 받은 봉투를 보았다. 봉투 안을 열어보니 5만원짜리 1장이다. 적지 않은 금액에 놀라서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다.

 

너 이거 회사에서 받은 거 아니지? 받은 거 맞아요. 요즘은 5만원도 주냐? 생일이라고 나온 거예요. 


  아차 싶었다. 회사에서 직원에게 생일선물로 나온 상품권을 나에게 준 것이다. 조카들 롤케이크라도 사 먹일 생각이었다면 너무 큰 액수이다. 순간, 쪼갤 수도 없었을 난감함이 떠오른다. 성의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큰 마음이 담겨있는 상품권 선물이다. 사서 주었어도 미안한데 저가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었다니 더 미안하다.



  늘 상품권은 적혀있는 숫자만큼의 값어치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준비할 때에는 정성껏 준비 한들 좀처럼 마음을 담기가 어려운 선물이지 않은가. 상대방의 기억에도 잘 남지 않을 선물이라는 생각엔 괜히 주기도 전에 서운해진다. 하지만, 오늘은 좀처럼 애틋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 상품권을 받아보았다.

 

  전화 통화를 마치는 말미에 다음부터 이런 거 주면 우리 못 만난다면서 엄포를 놓는다.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주지 못한 내손이 부끄러워 더 그랬는지 모른다. 

  왠지 상품권에 담긴 마음을 이해 못할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사는 것보다 그냥 내가 써버리는 것이 낫지 싶다. 그냥 내가 갖고 싶은 것 사야지. 그리고 계속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지.





써 놓고 보니 결국 내 욕심만 챙겼다는 소리네.



이미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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