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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Jun 19. 2016

아빠는 슈퍼맨이 아니다

슈퍼맨은 할 수 있을라나?

여보, 인라인스케이트 탈 줄 알아?


  어린이날, 가족끼리 집 근처에 있는 서울숲 공원에 왔습니다. 어딜 가나 사람 많을 때니, 차라리 가까운 공원에서 놀기로 했습니다. 공원도 이런 날은 여러 가지 놀거리와 볼거리가 있을 법합니다. 가깝다고는 하지만 자주 오지는 못했던 곳입니다. 역시 아이들이 제일 신이 났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가 먼저 향했던 곳은 인라인스케이트장입니다. 큰 아이의 어린이날 선물입니다. 어린이날, 아이들은 중력의 반만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어깨에 맨 장비들이 성가시지만, 아이들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앞서 달려가는 녀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잠시 후 큰 아이의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쳐 주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가르쳐 줘야 하나, 어? 그러고 보니 난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줄 모르잖아? 색시를 바라보며 탈 줄 아는지 물어보았더니 본인도 모른다고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아니 뭘 믿고 내가 가르쳐 주리라 생각한 것이지? 인라인스케이트를 ‘롤러블레이드’라고 부르던 시절, 여의도공원에 혹시라도 가면 한 번쯤 대여해서 타본 적 있을지 모르지만, 제 장비를 가져 본 적도 없습니다. 타 보았다는 기억도 정확하지 않아 아주 어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탔던 것과 헷갈렸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자전거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입니다. 차마 아이에게는 말을 못 하고, 보호장구와 스케이트를 챙겨주었습니다. 아, 이걸 어쩌나.


  색시를 원망하며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웁니다. 엉금엉금. 앞으로 발도 제대로 못 디딥니다. 일어나자마자 뒤로 기울어지는데 손잡은 저조차도 어쩔 줄 몰라 넘어지고 맙니다. 자전거 가르칠 때는 이렇게 저렇게 머리라도 굴려보았는데,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 타던 경험을 더듬어봅니다. 저를 믿고 있는 아이의 두 손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다시 살금살금, 저만치 가보자. 아이가 다리에 힘이 한참 모자란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집에 가고 싶습니다. 다음에 다리에 힘이 더 생기면 태우죠 뭐. 아니, 솔직히 인라인스케이트 교본이라도 한번 구해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쌩쌩 잘도 달리는 다른 이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며 열심히 아빠 손을 잡고 움직여 봅니다. 아직도 아빠를 믿고 있나 봅니다. 괜히 미안해집니다. 색시는 이미 언니만 인라인스케이트 사줬다고 칭얼거리는 둘째를 달래며 멀찍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래, 다시 움직여 보자. 다리를 11자로, 한쪽 다리를 옆으로 밀듯이, 무게 중심을 다른 한쪽 다리에 놓고…. 아이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그저 바퀴 달린 신발이 스르르 움직이는 모습을 신기해합니다. 재미있어? 응.


  아빠는 재미없다. 


  우리가 트랙을 달리는 사람들 방해하지 않도록 한 쪽 구석에서 연습했습니다. 그때, 트랙 안쪽에서 다른 인라인스케이트 강습 팀이 있습니다. 곁눈질로 그 팀을 바라봅니다. 강사의 강의 장면을 눈여겨보았다가 한 번씩 써먹을 생각입니다. 다시 손 붙들고 엉금엉금.

  이제 좀 익숙해져서 좀 더 멀리 왔다 갔다 해봅니다. 트랙 안 쪽 너른 쪽도 지나가 봅니다. 아까 본 강습 팀이 잠시 휴식을 갖습니다. 우리 쪽을 쳐다보던 강사가 딸아이를 부릅니다. 아마도 우리 모습이 못내 안쓰러웠겠지요. 기본적인 자세부터 조금씩 가르쳐 줍니다. 제가 붙들고 했을 때보다 훨씬 미끄러져 나가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아,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싶은 순간 밝은 표정으로 아이가 저를 돌아봅니다.

 

  “아빠! 이 아저씨가 아빠보다 훨씬 나은데?!”


  그다음 주부터 그 아저씨는 아이의 인라인스케이트 선생님이 됩니다. 





그런 소릴 듣고 수강 신청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슈퍼맨도 인라인스케이트는 못 탈 껄? 못 가르칠 껄?



이미지 참조 : pixabay.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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