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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Sep 18. 2017

독박 육아

누구나 가장 싫어하고 누구에겐 가장 가까운 말

다 필요 없고, 체력 좋은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임


  모여 있는 사람 모두 공감의 박수를 쳤습니다. 모임에서 11개월 된 아이의 엄마와 함께 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9살, 6살이니 요만큼 애기엄마와 같이 할 기회가 오랜만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성장 스케줄에 부모의 삶의 패턴도 달라지는 것 같아 괜히 씁쓸합니다. 


  요즘이야 제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본의 아니게 가정적인 사람으로 오해받지만, 큰 아이가 저만할 때, 여느 아빠들처럼 저도 육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맞벌이하면서 오롯이 색시한테 모든 걸 맡겼었지요. 물론 장모님의 희생이 차지하는 부분도 상당합니다. 사람들이 큰아이에 대해서 흔히 묻는 질문들 '잠은 잘 자는지' '우유는 잘 먹는지' '잠투정은 심한지' 등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을 만큼 아이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이만큼 성장한 아이들 챙기는 것도 힘에 부치니 이제야 갓난아이 엄마를 쳐다보면서 그나마 조금 공감하는 정도입니다.


  뻔한 이야기입니다. 50kg도 안되어 보이는 가냘픈 엄마가 사내아이 하나 건사하기 얼마나 어렵겠어요. 사람들에게 3분도 집중해서 얘기하기 어렵고, 우리 이야기를 5분도 가만히 앉아서 듣지 못합니다. 다른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고 나서야 힘든 속내를 꺼냅니다. 먼저 키워 본들 좋은 육아 방법 혹은 손쉬운 육아 비법 따윈 터득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스케줄이 달라질 뿐이죠. 그래서 "체력 좋은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 란 소리도 나왔던 겁니다.



  독박이란 말이 들을 때마다 거북하지만, 이만큼 절묘한 표현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잠든 시간이 길수록 효자라는데, 그 시간도 지쳐서 쓰러져 있기가 태반. 아이가 없어도 해야 하는 온갖 살림이 남아있지요. 퇴근하는 남편은 집이 어지럽다고 타박합니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만' 할 수 있는 시간이 10분이라도 주어지면 좋겠지만 24시간 아이에게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늘 안고 있어야 하니 팔다리가 아프긴 매한가지. 남편이 호기롭게 사다 놓은 고급 카시트나 시어른들의 눈총에도 욕심을 내어본 유모차, 그리고 친정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그네, 보행기 다 필요 없습니다. 당최 가만히 앉아 있어야 말이죠. 병원에 갈 시간도 없지만 가봐야 원인 모를 통증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니, 원인을 알지만 해결할 수 없습니다.


  퇴근이 없는 일상. 우울증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합니다. 신앙으로 극복하려고 해도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는 더 기도하고 믿음으로 보살피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몰아붙입니다. 언제나 아이는 축복이라고만 하니, 축복이 축복 같지 않은 나만 늘 잘못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 예뻐해도, 남의 애는 다 예쁘기 마련. 예수님도 총각이었으니 어린아이가 천국 간다고 했겠지. 그 양반이 모유수유의 고달픔을 알기나 할까요. 그나마 힘든 내색은 아이를 낳지 못해 오랫동안 기다리는 친구 커플 앞에서는 하기 어렵습니다. 밤늦게 돌아오는 피곤한 남편은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하루의 피로가 모두 씻어진다고 하니 부럽습니다. 피로가 씻어질 수 있다니. 제발 술 먹고 자는 애 깨우지나 마라.


  좋은 부모가 되는 법, 잘 양육하는 법을 보고 읽고 해봐도 도무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운 지 너무 오래되어 잊었거나 아이를 상담실에서만 만나본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가끔 만나는 시부모님의 “애는 낳아 놓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키운다”는 소리, 친정엄마가 좋은 부모 십계명 따위 냉장고에 붙여주면 어디 딴 세상에서 오신 듯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어깨가 빠질 듯 아이 둘러매고 나가봐야, 모르는 사람들의 참견 아니면 맘충 소리 들을까 두렵습니다. 그나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또래 엄마들 만나 하소연하고 위로하는 것이 전부. 잠시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들끼리 부대끼다 얼굴 생채기라도 생기면 좋던 분위기도 관계도 깨어지기 십상입니다.




  가끔 미혼의 친구나 후배가 결혼하면 좋은지, 결혼은 꼭 해야 하는지 물어볼 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제가 흔히 자유로운 일상을 그리워하는 여느 유부남들과 같아서라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아닙니다. 

  남편이자 아빠가 되어 이 힘든 과정을 함께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갓난아이 엄마를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끄적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 어릴 적 소홀했던, 그래서 색시와 장모님이 힘들었던 시절을 아무리 반성해도 똑같이 보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네요. 부디 예비 아빠들, 예비남편들이라도 저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





'육아'로 조회한 이미지들은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있다.


이미지 참조 https://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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