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공주텐트, 3만원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공원에서 낮잠을 잘 용도로 마련한 이 텐트는 4면이 모두 핑크색이고 앞, 뒤 양면에 4명씩의 디즈니 공주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다. 애초에 사람 한명(나)과 강아지 한 마리가 쓸 텐트였기 때문에 사이즈를 딱히 고민하지 않고 싼 맛에 주문해버렸다. 가격은 3만 원대. 검색에서 결제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단 조립은 매우 쉽다. 텐트 천장부분에 X자로 폴대를 교차해 넣고 바닥에 고정시켜주면 끝난다. 방충망도 있고 지퍼부분도 2중으로 여닫을 수 있어서 가격대비 텐트로써의 구실을 나름 다 하고 있다. 이정도면 기능적으로는 매우 만족한다.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아주아주 창피하다는 것이다! 나는 공원에 가서 이 텐트를 설치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곳에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알록달록한 색깔의 캐릭터 텐트가 매우 많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공주텐트정도는 가볍게 묻힐 줄 알았다. 하지만 말썽쟁이 아이들을 둔 부모님들은 튼튼하고 심플한 텐트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강아지와 함께 공원에 갔다가 차마 텐트를 펴지 못하고 돌아온 이후로 이 텐트는 창고행이였고 그 뒤로 빛을 보지 못한 채로 오랫동안 있었다.
하루는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강에서 텐트치고 치맥 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에게는 마침 훌륭한 텐트가 있다고 말해두었다. 친구와 함께라면 이 텐트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해서 우리는 텐트를 치고 5분간 말없이 웃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갈 때도 웃었고 들어가서도 웃었다. 키가 큰 편인 친구는 앉아있기만 해도 천장에 머리가 닿았고 공간이 협소해서 싸온 음식들을 펼쳐놓는 데만도 애를 먹었다.
치맥 한잔 하면서 노을 지는 여의도를 바라보는 건 정말 좋았다. 더 이상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서 우리는 나란히 누웠고 곧 하늘이 어두워지고 가로등과 63빌딩에 불이 들어오니 정말 최고였다. 나와 친구는 지금까지도 이날의 이야기를 한다. 3만 원짜리 텐트는 딱 하루 그 가격 이상의 값어치를 하고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 공주텐트 덕분에 저녁 찬바람을 피해 공원에 누워서 늦은 시간까지 수다 떨며 놀 수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재밌는 추억을 하나 더 만들어서 행복했다. 충동구매로 산 디즈니 공주텐트 대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