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영어회화, 매주 목요일 8시
동생의 오랜 인터넷 영어회화 선생님인 외국인 친구 'Rose'와 1주일에 한 번 1시간동안의 프리토킹을 지켜봐오던 중이었다. 막연하게 재미있겠다고,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어느 날 술을 한잔 하고 귀가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나도 할게 그거.”
사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생각하기 시작하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결정한 일이었다. 새해에 접어들었고 두렵게만 생각하던 뭔가를 하나 해보자 하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인터넷 영어회화였던 것이다.
내가 출퇴근 하는 회사는 합정역 근처에 있는데 가까이 홍대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도 흔히 볼 수가 있다. 한번은 퇴근길에 너무 비싸지 않은 숙소를 찾고 있다는 한 외국인 여행객의 기습 질문에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랗고 높은 호텔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라고 말해버렸다.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숙소였다. 나는 근처에 아담하고 깔끔한 게스트하우스도 알고 있었고 잠깐만 기다려준다면 그 외국인의 취향에 맞는 적당한 숙소를 검색해서 찾아봐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에 그만 대충 답하고 황급히 달아나버린 것이다.
Rose와의 수업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마다 스카이프 화상통화로 진행되고 그날 있었던 일이나 관심사, 문화, 친구 이야기 등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영어로 말하고 교정 받는 형태이다. 자유롭게 이야기 하다가 새롭게 배운 단어 몇 개로 문장을 만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알아듣기는 희한하게 좀 하겠는데 도대체 입을 뗄 수가 없다.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이야기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데 우선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내가 잘못된 문장으로 말을 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는 거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으니 우선 말을 하고 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고 틀리든 말든 입을 떼게 된다. 특히 아주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말이 빨라지고 온갖 단어를 동원해서 문장을 만들고야 마는데 사려 깊은 타입인 나의 선생님 Rose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고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교정을 해준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고 적어도 두려움 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가 있게 되었는데 사실 이것으로 나의 가장 큰 목적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애초에 유창한 영어가 목적이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갑자기 떨어져도 목숨을 부지할 정도만큼만 하게 되는 것 정도가 딱 원하는 거였다.
5분 만에 결정한 것에 비해 얻은 것이 정말 많은 소비였다. 이 소비는 매달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살면서 내가 한 지출 중에 가장 잘한 것 중에 하나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어딘가에 사는 외국인과 취향과 일상을 외국어로 공유한다는 것도 묘한 재미중에 하나다. 이 소비에는 단점이 거의 없고 간혹 목요일 저녁에 놀고 싶은데 바로 귀가해야하는 정도가 약간의 단점이라고 볼 수가 있다.
최근 Rose의 생일에 나는 작은 선물을 보냈고 Rose는 내 손목 타투로 적절할 영어 문장을 골라주었다. 그리고 가끔 늘어가는 내 영어실력에 보답하는 의미로 그녀에게 몇 가지 한국어를 알려주기도 한다. 사전에는 안 나오지만 많이 쓰이는 표현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