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X100f, 160만원
생애 첫 신용카드를 만들었을 때였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체크카드만 사용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다.
취업준비생 시절에는 매달 나가던 핸드폰 요금, 교통요금이 밀릴까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지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무너지고 말았다. 들쑥날쑥하게 적은 수입이 있던 때와는 달리 매달 월급이 들어온다는 상황에 안정감을 느꼈나 보다. 6개월간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6개월은 내 인생이 무탈하기를 바라며 나는 160만원짜리 카메라를 결제했다. 6개월 무이자 행사 맞죠? 라는 괜한 질문과 함께.
필름카메라의 감성을 가진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클래식한 디자인과 필름의 색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인 후지필름의 카메라였다. 필름카메라로 이름을 날리던 기업이라 그 브랜드이미지를 이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다들 내가 그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필름카메라냐고 물어볼 정도의 외관이었다. 아닙니다. 디카에요 디카. 그 친구와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여행을 함께 했고, 훌륭히 제 몫을 해주었다.
살림을 거덜내는 취미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동차, 낚시, 사진.
나는 중학생 때부터 사진에 취미가 있었고,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사진을 취미로 가지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메라 자체만 해도 비싼데 관련 액세사리는 카메라 가방, 조명, 삼각대, 노출계, 등등등... 오만가지고 다 가지려면 오조 오억원은 필요한 듯 하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명필이 아니기에 붓이라도 좋은 걸 쓰고 싶었다. 같은 장면을 찍었을 때, 좋고 비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적당히 싼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훨씬 섬세하고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그 디테일을 구현하는 기술력 때문에 비싼 거니까. 그리고 좋은 카메라로 찍어야 사진 실력이 늘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또 사진이 취미인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느낀 만큼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좋은 카메라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나의 드림 카메라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 라이카다! 멀지 않은 시일 내에 갖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나에게 무슨 카메라가 좋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 얘기하기를 가장 좋은 카메라는 손에 있는 카메라라고 한다. 사진 찍을 때 가장 많이 쓰는 카메라.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카메라. 핸드폰 카메라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고 멋진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버릇이 없어서 그런지 여전히 영 어색하다. 이번 핸드폰 할부가 끝나면 카메라 좋은 핸드폰을 사볼까 싶다. 이렇게 또 비싼 핸드폰을 살 좋은 핑계를 만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