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셰르 무쇠 냄비
발단은 아내가 가져온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스타우브 무수 조리>라는 무쇠냄비를 이용한 레시피 책. 물을 사용하지 않고 재료의 수분만으로 조리를 하는 걸 ‘무수 조리’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릴 수 있고 영양소도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책에 소개 된 레시피를 보는 순간 이건 사야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무쇠냄비는 가격이 비싼편이라 섣불리 구매에 나서지 못했는데 아울렛에 있는 주방 용풍 편집샵에서 스타우브를 팔던 걸 기억해내고 파주로 향했다. 하지만 매장에서 스타우브는 얼마 전 빠지고 차세르라는 브랜드만 취급한다고 했다. 아니, 르쿠르제도 스타우브도 아닌 차세르라니. 우리 기준에서는 듣보잡이었지만 판매원의 꼼꼼한 설명과 파격적인 세일 가격에 마음이 흔들려 우리 집 첫 무쇠냄비로 차세르 20cm 양수 냄비 루비 컬러를 샀다.
무쇠냄비로 도전한 첫 요리는 스튜. 파프리카, 양배추, 당근, 양파, 연근 각종 채소를 잘 달궈진 냄비에 볶아주다가 두툼하게 썬 삽겹살과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뚜껑을 덮어주면 끝!
이렇게 하면 별도의 물을 넣지 않아도 재료 자체의 수분과 냄비 안에서 발생한 수증기만으로 조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약불로 30~40분 조리해서 뚜껑을 열어보니 맛있는 스튜가 완성되었다. 삼겹살이 들어가서 맛없는 요리는 없겠지만 이건 정말 뭔가 달랐다. 당근이, 연근이 이렇게 맛있어나 감탄을 하면서 ‘무수조리’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무쇠냄비는 맛과 멋을 보장하는 대신 그만큼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했다. 조리 할 때는 반드시 약불로 천천히 예열을 해야했고 조리후에는 녹이 슬지 않게 바로 물기를 제거하고 기름칠을 해줘야 했다. 무쇠로 만들어진 만큼 존재감도 상당했는데 섣불리 한 손으로 냄비를 들려고 하다가는 정말 큰코 다친다.
이렇게 까다로운 녀석에게 우리 부부는 ‘차돌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애지중지 아꼈지만 요즘들어 관심이 조금은 시들해졌고 녀석의 뚜껑 위로는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급기야 ‘무수 조리’라는 스페셜한 요리를 담당하던 녀석은 이제 된장찌개도 담당하게 되었다. 차돌아 미안, 조만간 또 스튜 한번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