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동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Jun 03. 2024

방송에 귀 기울이면 특별한 것이 있다

노동요 - 철도 인생

마이크를 붙잡기 힘들었던 때가 있다. 친구 생일 잔치 중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는데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쩔쩔맸던 기억이 있다. 마이크 울렁증이 아니라 남 앞에 서는 게 쑥스러웠던 것 같다. “얘가 숫기가 없어서.” 누군가에게 엄마가 내 소개를 할 때마다 항상 따라 나왔던 이 수식어는 내가 참 싫어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남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더 앞에 나가려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때 발표를 도맡았다. 마이크를 잡고 자주 앞에 나서니 말솜씨는 둘째치더라도 내성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역사 안내 방송이나 열차 안에서 안내 방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예전보다 방송할 일이 잦지 않다. 자동 방송이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방송기기 문제로 자동 방송이 안 나오거나 자동 방송으로 할 수 없는 내용을 방송해야 할 때 직접 방송하는 추세다.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어떻게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대강 머리에 그려졌다. 대본을 써서 읽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짧은 시간에 빨리 방송해야 하는 때가 많아 그럴 여유는 없다. 내가 쓰는 방법은 편지를 쓰듯 하는 것이다. 편지는 첫인사로 시작해 끝인사로 끝난다. 방송도 인사로 처음과 끝을 맺고 이 사이에 방송한 이유와 이에 따라 어떻게 하는지 방안, 요청 등을 제시한다.


나름의 비결이 있다고 해도 너무 자주 방송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열차 방송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사람이 자주 있다. 도움 되라고 하는 방송인데 소음이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한 번은 감성 방송을 했다가 호되게 당한 때도 있었다. 지난 설날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다가 다른 열차 사고 때문에 열차가 많이 지연되었던 적이 있었다. 약 올리는 것처럼 된 건지 여기저기서 들리는 항의를 버티느라 혼난 적이 있다. 이렇게 방송은 시기적절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재개발원 방송 교육을 받았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를 초빙해 진행하는 강의였다. 수업 시간이 짧아 아나운서처럼 장음, 단음 같은 전문적인 발음까지 교정받지는 않았지만 전보다는 어떻게 방송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수강생들은 사투리, 억양, 목소리 톤 등 저마다 고민이 있었다. 적절한 방법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아나운서를 보며 전문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긴 문장을 읽는 동안 어느 순간에 잠깐 쉬어야 하는지, 투박하지 않고 친절하게 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힘 있는 목소리를 위한 복식호흡의 필요성 등 여러 비결을 속성으로 배울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오랜 세월 철도라는 한 분야에서 일해서 그런지 다들 꽤 능숙하게 방송한다는 것이었다. 또 글로 설명하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다들 비슷한 방송 ‘쪼’가 있었다. ‘코레일 쪼’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1, 2, 3, 4성을 가진 중국어 성조처럼 특정 부분에 목소리를 올리고 내리는 특징을 가진 회사 특유의 습관이다. 다들 누가 맞춰보자고 한 게 아닌데 지금도 기차를 타보면 들리는 형식으로 방송했다. 아마 전통 음식이나 음악이 다음 세대에 전수되는 것처럼 회사의 방송 방식도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교육의 영향인지 아무래도 요즘 출퇴근길 전철 차장님들의 방송에 귀가 기울여질 수밖에 없다. 수업에서 배운 방식을 기준으로 이들이 방송을 잘하는지, 배울 점은 무엇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점검하게 됐다. 능숙하게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잘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승객들이 왜 민원을 넣는지도 알 것 같았다. 방송 내용이 잘 안 들릴 때도 있고 소리가 너무 클 때도 있었고 방송 속도도 제각각이었다. 차라리 방송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방송하는 사람의 기술 문제도 있지만 방송 기기와 객실 상태 점검에도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장은 운전실 안에 있기 때문에 객실 상태를 잘 모른다. 그래서 방송 소리 조절을 적절하게 못 하는 때가 많은 것 같았다.


객실을 둘러보니 방송이 나와도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다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방송해도 이어폰으로 귀를 막으면 방송 내용은 소용없다. 그래서 자신이 방송을 잘 듣지 않아놓고 전혀 방송하지 않았다거나 방송이 잘못되었다며 민원을 넣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럴 땐 참 답답하다. 승객을 위해 하는 방송인만큼 조금만 방송에 귀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궁화꽃은 피우기 바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