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동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칸다 포에버 Jun 17. 2024

전철차장의 식사

노동요 - 철도 인생

나는 입이 짧은 편이다. 가리는 게 많고 식당도 보통 가는 곳만 갔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점점 음식을 골고루 먹게 됐고 일을 하다 보니 식당도 여기저기 찾아다니게 됐다. 배부르게 먹는 폭식, 맛있는 음식만 찾는 미식, 여행하듯 음식을 찾거나 음식 방법을 탐구하는 탐식 등 식사 방식을 여러 가지로 나눈다면 나는 일반화된 맛의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 따라 맞는 음식을 찾는 미식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식과 탐식의 하이브리드형 인간이 되었다. 전철차장으로 일하면서 입맛이 변했다. 전철차장으로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다양한 식당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식당도 도전하는 게 소소한 취미가 됐다.  맛의 실패는 싫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는 혀를 즐겁게 하기보다 배를 든든하게 하는 쪽으로 식사의 가치관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다.


전철차장은 일반적인 식사 시간에도 일을 하기에 밥을 먹는 때가 일러지기도 하고 늦어지기도 한다. 돈을 아끼려는 사람은 그나마 저렴한 회사 식당을 이용하고 식당 밥이 싫은 사람은 조금 돈을 더 내서라도 외부 식당 밥을 먹는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을 때는 차에서 미리 산 김밥이나 빵 등 간편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나는 9:1 정도의 비율로 회사 식당 밥을 더 먹는 편이다. 여기저기 움직이는 것도 귀찮고 식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식사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지역의 외부 식당을 돌아다니는데 그 재미가 소소한 편이다. 보통 맛집을 검색해 다니지만 그게 싫을 때는 바로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맛이었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되새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기록의 용도로 사진을 찍는 습관도 생겼다.


보통 사람이 많은 곳이 맛집이라는 말이 많지만 역 앞에 있는 식당 대다수는 맛이 없더라도 사람이 많은 편이라 함정에 빠질 때도 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음에는 안 가면 되니 나중에 방문할 후보군을 정해두기도 한다. 맛집 찾는 연예인이 지역별 맛집 목록을 만들어 놓듯 나만의 식당 일지를 기록한다. 어떤 지역의 몇몇 식당은 내 단골집이 됐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입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눈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을 볼 때 느낀다. 혼자서 먹는 사람, 함께 식사하는 커플과 가족. 남녀노소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밥을 먹는다. 조용히 먹는 사람도 있지만 통화를 하는 사람, 영상을 보는 사람, 대화를 하는 사람. 여러 소리도 들리기에 식당은 눈, 귀, 입 모두 심심하지 않은 곳이다. 나는 당연히 혼자 밥 먹는다. 이를 극도로 싫어해 어떻게든 동료와 함께 먹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괜찮다. 혼자 즐기는 재미가 나름 있다. 예전 같으면 조용한 분위기를 선호했다면 지금은 라디오 듣는 기분으로 여러 소리를 귀에 담으며 밥을 먹는다.


혼자 밥 먹는 게 물론 외로울 때도 있다. 식사라는 것이 허기를 달래기도 하지만 소통도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밥 한번 먹자고 다음을 기약하고,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 소통과 관련된 것 아닌가. 그래서인가 요즘은 짝이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기만의 시간도 필요하나 사회적 동물로서 상호작용도 중요하니 말이다.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지 전철차장으로 일하다 보면 가끔 홀로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사람과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도 가끔은 피로감이 드는 게 전철차장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러 사람과 함께 북적이며 밥 먹었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송에 귀 기울이면 특별한 것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