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에서 일하는 것이 원래 나의 꿈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지금은 조금 꿈에서 멀어졌지만 그래도 가슴 한쪽에 계속 품고 있다. 누군가는 내게 우회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떤지 권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영상을 만들어 본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대리만족에 불과한 일이다. 나는 진짜 언론인이 되고 싶지, 간접 체험으로 내 아쉬움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 타협할 생각이 든 것인지 회사 사보 기자에 지원했다. 먼저 경험한 사람은 자주 여기저기 불린다며 고생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남의 고생담만 듣는 것보다 내가 직접 고생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사보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 지금 함께 일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입사하고 한 번도 빠짐없이 사보를 읽었는데 콘텐츠가 부족하니 돌림 노래하듯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가장 최근 사보를 읽었을 때는 기존과 다른 콘텐츠가 많았다. 아마 최근 지자체 행정기관이나 공기업들의 SNS가 대중 친화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사보도 그런 추세를 따르려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내가 여기에 더 생각을 덧붙인다면 더 튀는 내용이 늘어날 것 같았다.
안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합격하고 나니 걱정이 찾아왔다. ‘내가 한다고 과연 사보가 새로워질까?’ 그렇게 만들고 싶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나 또한 기존에 만들어진 사보의 행보와 똑같을 것 같았다. 호언장담할 수는 없지만 조심스럽지만 재미있게 끌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본사의 기자 위촉식에 참석했다.
기대와 설렘으로 참석한 것과 달리 많이 김빠지는 위촉식이었다.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을 듣는데 사보 기자라는 우리에게 할당된 사보의 페이지는 달랑 두 장이었다. 다른 콘텐츠는 제작사에서 만들고 두 페이지에 내 기사, 글을 담기 위해 10명의 사보 기자가 다퉈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비판을 해도 좋으니 자유롭게 써 달라.”라고 말했지만, 왠지 사측 입맛에 맞는 글을 쓰지 않으면 결코 페이지에 글을 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보 기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글보다는 호객 행위였다. 이미 회사는 SNS에 각종 웃긴 영상을 올리며 회사를 홍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SNS가 대외적 홍보 수단이라면 사보는 대내적인 홍보 수단이었다. 당연히 사내 동료들이 사보를 많이 읽을 수 있도록 알려야 하지만 우리 글을 읽어달라는 게 아닌 사보 좀 읽어달라고, 콘텐츠에 참여해달라고 말해야 하는 게 우리의 주된 임무였다. 그래서인지 나뿐만 아니라 기자로 선발된 몇몇 사우들이 자기가 상상하던 기자로서 역할과 회사에서 원하는 기자로서 역할이 달라 괴리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위촉식 후 사보 기자를 위해 초대한 강원국 작가의 특강이었다. 강원국 작가는 당연히 나를 모르지만, 나는 독자이기에 강원국 작가를 안다. 예전부터 글을 잘 쓰고 싶어 강원국 작가의 책을 탐독했다. 책에서 배운 것이 많았기에 직접 만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가슴 뛰는 일이었다. 미리 챙겨온 저서에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 감격은 아직도 남아 있다.
사보 기자로서 내가 원하는 만큼, 바라는 방향으로 활동할 수 없을 것 같아 실망이 크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조금이라도 콘텐츠를 통해 회사의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은 공기업, 공직자들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이를 깨지 않고 그대로 갔으면 하는 이들도 있다. 공직자로서 품위 같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굳이 나랏일을 하면서 자기를 깎아내리며 우스꽝스럽게 할 필요는 없다. 수요와 유행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이를 따라야 할 의무도 없다. 그래도 딱딱하고 친화를 이루기 어려운 모습. 이렇게 굳어진 걸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대내외에서 다양한 층의 관심을 끌어오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쁜 게 아니라면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충주시를 유튜브로 인기 상승하게 한 공무원 김선태 주무관처럼 우리 회사도 굳어진 관념의 벽을 두드리고 돌을 던져 균열을 만든다면 유연함이 조금은 가미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굳이 내가 주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다리를 놓는 역할이라도 한다면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로 사보 기자 일에 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