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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May 20. 2024

흔들리는 장수 프로그램

식당에 갈 때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노포’를 맛집이라며 찾는 사람이 많다. 노포 식당의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포 식당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맛과 가격, 식당의 구조까지 오래 변하지 않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식당을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하지만 입으로 느끼는 맛뿐만 아니라 인간은 다양한 감각과 기억이 있다. 그만큼 식당의 즐길 거리가 많다면, 그것이 오래 변하지 않는다면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방송국의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오래 유지하는 프로그램은 재미를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청자와 시간을 함께하며 기억을 안고 간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소재의 고갈, 트렌드의 변화. 이런 이유로 프로그램은 늘 존폐 위기를 겪는다. 요즘 방송국마다 장수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변화를 겪고 있다. KBS의 <전국노래자랑>과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그 예다.


방송국에서 장수 프로그램의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간판이다. 간판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꼭 시청률 높고 돈을 많이 벌어주는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기억해 주는 프로그램도 간판 프로그램이다. 오랜 세월 함께한 이 프로그램에게 시청자가 바라는 것은 혁신적 변화와 엄청난 성공이 아니다. 세대 간 유대와 공감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국은 간판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것이 전자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다른 방송으로 성공하면 되지 않겠느냐, 장수 프로그램은 그냥 유지하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방송국 입장에서는 그저 낭만에 불과한 말일 수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다른 노래 프로그램에 비하면 빈약해 보일 수 있다. 압도적인 가창력을 자랑하는 유명 가수가 주로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음향 장비가 독보적으로 뛰어나 음악을 오롯이 감상하는 프로그램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국노래자랑>의 정체성이다. 부족해 보이고 촌스러워 보여도 가수가 아닌 일반인도 편하고 즐겁게 노래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 고장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동네잔치 같은 프로그램이 전국노래자랑이다.


진행자 송해의 타계 이후 <전국노래자랑>은 변화를 겪었다. 코미디언 김신영으로 진행자가 결정된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장수 프로그램의 장수 진행자가 바뀐 것은 큰 변화다. 아마 제작진이 김신영에게 바란 것은 예능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인물 모습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친인척 흉내를 내는 모습으로 시청자와 참여자, 관객에게 다가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중압감이 있었던 것인지 진행자로서 역할에 집중한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자주 보였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김신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여기에 프로그램도 분위기가 바뀌면서 오래 프로그램을 지켜본 이들에게 이질감을 주었다. 
 

코미디언 남희석으로 진행자 교체를 결정했다고 하지만 이전처럼 <전국노래자랑>을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희석이 못할 거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송해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해와 나이 차가 나지 않는 사람을 섭외하라는 의견이 있다. 예전 같은 방송 분위기를 찾아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이전 같은 맛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는 폐지설이 나오면서 시청자의 반대뿐만 아니라 SBS에서 자체 반대 분위기가 조성됐다. 방송국 관계자는 논의된 게 없다는 말부터 5월 이후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지겠다는 말까지 나오며 이를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휴지기를 가지고 다시 돌아온 프로그램은 손에 꼽는다.


1998년부터 우리 주변의 놀랄 만한 일들을 찾아다니며 웃음과 감동을 준 이 방송은 회를 거듭할 때마다 소재 문제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좁은 땅에서 오래 소재를 발굴한 것이 대단할 정도다. 특집처럼 기획될 때가 있었지만 그 횟수를 늘려 오래전 출연했던 인물의 근황을 찾아본다거나 비슷한 사연의 주인공들의 만남, 대결 등 여러 방면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한다면 더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 장수 프로그램은 다양한 세대와 함께하는 간판 같은 존재다. 그 역할만으로 돈과 시청률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아도 큰 의미가 있다. 이 프로그램들에 익숙한 사람, 이를 좋아하는 팬층을 끌고 가는 것이다. 모든 요일, 모든 시간대의 방송이 큰 성공을 거둘 순 없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제작 PD와 편성 PD 아닌가. 간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시청자로서 고집인지 몰라도 내 인생과 함께했던 방송들이 흔들리고 사라지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 부디 MBC <놀러와>처럼 고별 방송 하나 없이 자막만으로 방송을 끝내는 일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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