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을 상상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상상에 그쳤다면 지금은 자기 스스로 여러 개의 삶을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부캐릭터’나 ‘투잡’ 같은 형식으로 취미 활동을 늘리거나 직업을 여러 개 가지는 사람, 자신의 자아를 여러 개로 나눠 특정 상황에 맞게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달리 하는 사람도 있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기 쉽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살 각오와 용기의 유무겠지만. 현실에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실현보다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두고 여러 가지 상상만 펼친다.
MBC <무한도전>에서 ‘타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방송한 적이 있다. 출연자가 시청자를 선정해 역할을 바꿔 서로의 일상을 체험하는 내용이었다. 의사 박명수, 야구선수 정준하 등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출연자는 직업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완전히 받아들여 행동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대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장면이 웃음을 만들었다.
이후 비슷한 부류의 방송이 나왔다. 유튜브 채널 <워크맨>은 한 가지 직업을 일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체험하는 방송인데 실제로 일하며 일어나는 상황을 재미있게 담았고 동료들의 일하는 요령, 어려움 등을 보여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받은 수당도 공개해 보는 이들에게 간접적으로 직업 탐색을 고민할 수 있게끔 했다. 물론 노골적으로 민낯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곳들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일반 TV 프로그램보다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담아야 해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순 없었지만, 속도감 있게 넣을 것과 뺄 것을 골라 구성한 것은 이 프로그램의 장점 중 하나였다.
김태호 PD가 MBC 퇴사 후 JTBC를 통해 방영한 <My name is 가브리엘>은 <무한도전–타인의 삶>을 이어받은 방송이다. 우리나라의 누군가와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외국 누군가의 삶을 사는 것, 일반인은 연예인의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타인의 삶과 비교해 아쉬운 것은 상상과 그 상상에 대한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삶을 사는 상상을 하지만 대개 내가 살고 싶은 다른 삶은 내 꿈이 담긴 삶이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의사의 삶을 선정한 것도 정준하가 야구선수가 하고 싶다고 한 것도 다 그런 것일 것이다. 연예인과 삶을 바꾼 사람들도 연예인의 삶을 한번은 살아보고 싶어서 출연을 결정했을 것이다. 외국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삶을 열심히 사는 모습은 보기 나쁠 게 없었지만, 보는 이는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감동적인 상황을 만들려고 해도 감정 이입하기는 어려웠다. 몇몇 출연자들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설상가상이었다. 삶을 바꾼 사람들이 잘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한국 대중문화가 강세인 만큼 이들에게 연예인 체험을 시켜주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담았다면 조금은 다른 재미를 만들지 않았을까.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체험하는 방송은 그 삶에 관련된 사람들과 얽혀 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직업 체험 테마파크인 ‘키자니아’처럼 체험에서 나오는 맛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My name is 가브리엘>이 조금은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이 무게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예능적 재미보다는 너무 드라마틱한 내용 전개를 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비슷한 시기에 나온 ENA <눈떠보니 OOO>은 <My name is 가브리엘>처럼 외국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방송이지만 과한 설정 없이 바로 타인의 삶을 체험한다. <My name is 가브리엘>과 <워크맨>의 특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이 방송은 설정에서 오는 오글거림은 없다. 특정 삶에 대한 로망 없이 다짜고짜 체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당황스러움에서 오는 재미는 이 방송이 더 크다. 화제성은 부족하나 인간을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이 크지 않다면 이 방송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