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래로 흐르는 건 눈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다
- 멀리 나갈까?
평소 분위기 좋은 카페를 좋아하는 동생을 생각하며 물어봤지만 아이를 돌봐야 하는 동생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자기 집 근처에서 보자고 한다. 예전 같으면 동생은 SNS로 예쁜 카페를 검색해서 여기저기를 가보고 싶다 했을 것이다.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는 동생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잠시 후 동생에게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기로 했다며 멀리, 또 오랫동안 밖에 있을 수 있다는 연락이 다시 온다. 문자에는 자신이 알아본 맛집과 함께 설렘 가득한 표현이 담겨 있다. 그 문자를 보고 있으니 29살이던 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 무서운 것 없이 당차던 아이, 그때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동생의 가장 어릴 때이다. 4년 전 봄날, 그때가 우리는 첫 만남이었다.
- 제게 동생이 있다고 들었어요.
친어머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형과 내가 아빠에게 보내진 이후 한 번도 만나지 않던 어머니를 다시 보기로 한 이유에는 동생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물음에 이십 대 초반의 어느 날, 거실에서 친척 어르신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떠올랐다.
- 딸이 하나 있데.
나는 직감적으로 친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린 딸이라면…, 그럼 그 아인 내 동생이 된다. 동생이라니, 평생을 동생으로 살아온 내게 동생이라는 존재가 또 다른 나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 세상 어딘가에 있을 여동생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를, 지나가는 타인에게 그렇듯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스치는 우리를. 그건 너무 슬픈 상상이었다.
- 제 존재를 아나요?
동생은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동생이 이미 결혼을 하여 작은 케이크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생의 성(姓)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27년 만에 다시 만난 친어머니에게 처음으로 건넨 부탁이었다.
첫인사를 뭐라 건네야 할까? 말은 놓아야 할까? 그래도 초면인데 존댓말을 해야 하나? 선물로 사 온 핸드크림은 마음에 들어 할까? 해결하지도 못한 많은 고민들로 동생 가게로 바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근처 상가 거울에 나를 비춰 괜히 이미 단정한 옷매무새와 머리를 몇 번이고 단정히 했다. 누가 보면 소개팅을 나가거나, 고백하러 가는 사람이라 여겼을 테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동생 가게의 문을 열자 가게 안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이제 내가 동생이라 불러야 할 여자가 있었다.
어색한 건 나뿐이었다. 정작 내가 만나자고 했으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한 나와 달리 동생은 마치 예전부터 만난 사이처럼 살갑게 나를 대했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나서 어색할 법할 텐데 처음부터 말을 놓은 채 오빠라고 부르며 많은 이야기를 묻고 꺼냈다. 동생은 나보다 우리 형과 더 비슷해 보였다. 형의 성격을 가진 존재가 여기 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서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 그날, 헤어지기 전 동생은 내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내 옆에 찰싹 붙은 동생과 함께 찍은 그때의 사진에는 활짝 웃고 있는 동생과 긴장한 티가 역력한 내가 있다. 그래도 그 사진 속에 우리는 서로 닮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생은 나와 만나기를 주저했었다고 한다. 이미 자신의 가정을 이룬 상황에서 낯선 오빠의 등장은 삶에 있어 크든 작든 변화를 불러올 테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또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동생도 사실 많이 긴장했었으며 어색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었다고 한다. 나보다 더 큰 용기를 내준 동생에게 고마울 뿐이다.
- 외롭지?
내가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날 때면 동생은 전화를 걸어 나의 말동무를 해주곤 한다. 첫 만남 이후로 우리는 종종 전주나 대전에서 만나 맛집을 찾아가거나 멀리 서울까지 남매 데이트를 다녔다. 더 시간이 지나 이제 동생은 자기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채 ‘오빠는 별일 없지?’ 하며 바로 전화를 끊거나, 국어 선생님인 나를 맞춤법 검사기로 활용하기도 한다. 때론 어서 결혼을 하라는 잔소리를 끝없이 늘어놓는다. 그런 날이면 다음날 동생에게 ‘어제 잔소리가 너무 심했지?’라는 문자가 온다. 동생이 엄마가 된 후로는 서로 연락하는 횟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한 번씩 만나면 우리는 끝날 줄 모르는 수다를 나눈다.
- 오빠 만난 거 후회해?
- 아니, 후회를 왜 해? 너무 좋은데.
우리는 그렇게 남매가 되었다.
어머니가 처음 동생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그 안에는 너무나 앳된 아이가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 다시 뵌 어머니 앞에서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사진을 보자 나오기 시작했다. 동생이 세상에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뻐서, 너무나 예쁘게 자라준 동생이 기특해서, 이 아이의 어린 시절에 내가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서. 처음 보는 여자 사진을 두고 마찬가지로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이끌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랑이 아래로 흐르는 건 눈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친어머니는 동생을 서점에 두고 일을 다녔다고 했었다. 어린 동생은 큰 서점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서점에서 홀로 책을 읽고 있는 학생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의 동생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어떤 책을 좋아하니? 혹시 오빠가 있니? 혼자 외롭지 않니? 상상 속에서 나는 그 어린아이에게 어떤 말로 인사를 건넬지 매번 고민한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의 끝은 늘 같다.
- 오빠가 너무 늦어서 미안해.
서로가 각자 살아온 시간에 비해 동생과 내가 만난 시간은 너무나 짧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에게는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피가 반밖에 섞이지 않은 우리는 그 시간으로 나머지 반을 채워갈 것이다. 어떤 피보다도 더 진한 남매를 만들어 갈 것이다.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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